돈 풀기와 부동산 띄우기로 버티던 한국 경제가 ‘최순실 게이트’의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리고 있다. 경제의 동력인 소비와 투자는 더 얼어붙었고 장기간 내리막길을 걷던 수출도 국가 신인도 추락으로 하락세가 가속화할 위기를 맞았다. 새로 경제사령탑으로 내정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한국 경제가 ‘살얼음판을 밟는 것처럼 위험한 상황(여리박빙·如履薄氷)’이라고 진단했다.
내수 부진으로 활력을 잃은 중소기업은 어렵게 받아 든 신용장마저 취소당하는 등 이미 국정 혼란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다. 미르재단 등에 출연금을 낸 53개 대기업은 검찰 조사를 받는 불안한 처지에 놓였다. 국가와 기업의 국제 신인도 하락이 염려스럽다. 여기에 미국 대선에서는 한국의 방위비 부담을 높이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던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국정 컨트롤타워가 실종됐다. 무엇보다 큰 리스크다. 통치권자인 대통령의 권위가 추락했고 국회의 기능도 멈췄다. 이 와중에 대선후보들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각개전투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들 중 일부는 국정 혼란을 부추기는 듯하다. 국민만 바라보고 민생을 챙기겠다던 많은 여야 지도자들은 다 어디 갔는가.
또 야권은 이번 기회를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는 듯하다. 별도의 특검을 요구하던 야권은 촛불 시위가 생각보다 격렬하게 전개되자 국회가 추천하는 ‘책임총리’에게 내각 구성과 내치를 넘기라고 대통령을 압박했다. 여당과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자 이제는 대통령의 2선 후퇴를 국정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들고 나왔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지난 8일에는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찾아가 국회 추천 총리 수용 카드를 제시했으나 야권은 이를 전면 거부하고 지난주 말 민중 시위에 동참했다.
박 대통령은 여야 영수회담 테이블에 책임총리 등 모든 국정 현안을 올려놓고 협의하자는 입장이고 야권은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전제조건으로 회담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국민이 여소야대를 만들어준 것은 ‘협치’와 ‘통합’으로 국정을 운영하라는 뜻 아니었는가. 야권의 영수회담 거부는 ‘국정 혼란’을 부추겨 박 대통령이 이에 굴복해 하야를 하게 하기 위한 꼼수로 비칠 수 있다. 국정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이로 인해 커지는 국민의 고통과 기업의 줄도산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 경우 야권은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를 당리당략에 이용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국민의 저항에 부딪히는 역풍도 배제할 수 없다.
내우외환에 처한 한국호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야권은 한국호를 구하기 위해 전제조건 없는 영수회담을 수용하기 바란다. 시간이 없다. 더구나 경제 문제는 하루도 늦출 수 없다. 여야는 미국 대선 리스크와 경제위기를 컨트롤할 임종룡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부터 서둘러야 한다. 야당도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내년 대선에서 집권을 꿈꾸는 책임 있는 정당이다. 한국호가 최대 위기에 처한 지금 야권은 민생과 직결된 국정 안정에 협조하는 등 책임 있는 정당으로 수권능력을 보여줄 때다. 이래야 반대만 하는 야당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국민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한편 국회에서는 400조원에 달하는 내년 예산을 심의하고 있다. 이 와중에 민생, 기업 구조조정, 4차 산업 지원 관련 예산 편성이 제대로 될지 걱정이다. 야권은 이 난국에 표를 얻기 위해 기업으로부터 법인세를 더 거둬 약자의 복지를 늘리는 ‘표퓰리즘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국회의원의 낭비성 쪽지예산을 없애는 방법으로 예산의 1%만 줄여도 4조원이 절감된다. 이는 야권이 법인세율을 올려 확보하려는 세수와 맞먹는다. 복지재원 확보 방법은 예산 절감과 세원 확대(과세 대상)가 먼저다. 그리고 세율 인상은 최후의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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