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 지도부가 ‘재창당 준비위원회’ 발족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비박계는 “친박이 주도하는 쇄신 작업에는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발끈하면서 당내 혼란상이 끝 간 데 없이 가중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박계가 아직도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당권 수성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비박계 좌장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9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거국내각 구성이 가장 시급하고 그게 완료되면 현 지도부는 사퇴해야 한다”며 “현 지도부가 재창당 준비위니 뭐니 추진하는 것은 국민이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비박계인 황영철 의원도 “이정현 대표가 추진하는 게 과연 국민의 공감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정말 이 나라를 걱정하는 건강한 보수를 위험에 빠트릴 시도”라고 폄하했다.
현재 이정현 대표는 친박계와 비박계 중진이 두루 참여하는 재창당 준비위를 통해 당을 쇄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 중진인 원유철 전 원내대표 역시 재창당 준비위와 별도로 당 혁신 로드맵의 일환으로 5선 이상 중진협의회 구성을 제안했으나 비박계인 정병국 의원이 “친박 주도 모임에는 참여하기 힘들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처럼 당의 리더십은 통째로 실종된 채로 친박·비박이 각자의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면서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여당 분열상의 근본 원인이 ‘친박 패권주의’에 있다고 분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정현 대표와 친박계 최고위원 등은 ‘사태 수습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사퇴를 거부하고 있지만 사퇴 요구를 수용하지 않음에 따라 수습은커녕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 파동으로 인한 총선 참패, 비선실세 국정농단 등 이 모든 사태의 핵심에는 대통령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친박 지도부가 사퇴 요구에 귀를 닫고 버티는 것은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이해 받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비박계는 지금 당장 분당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거론하지는 않는 상황이지만 친박계의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비박계의 한 중진의원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분당이 되면 누가 당을 나가느냐에 상관없이 소수의 강성 친박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이정현 대표가 끝까지 버티면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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