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업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부가 국무총리실 주도로 감정평가 수수료 체계 폐지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부의 방침에 감정평가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물론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반대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서비스 산업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감정평가 수수료를 자율 경쟁에 맡겼다가는 사회적 공공재 중 하나인 감정평가 서비스의 질적 하락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총리실 규제조정실, 규제 개혁 차원에서 감정평가 수수료 기준 폐지 추진=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총리실 규제조정실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안건을 올린 감정평가 수수료 체계 폐지와 관련해 1차 회의를 갖고 현재 감정평가액에 따라 최소 수수료 기준을 정해둔 감정평가 수수료 산정 기준이 시장 경제 원리에 맞지 않다는 의견을 국토부와 감정평가 업계에 전달했다.
감정평가 수수료는 1989년부터 도입됐으며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에 의해 국토부가 고시한 ‘감정평가업자의 보수에 관한 기준’에 따라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기준 수수료와 상·하한선을 정해두고 있다.
그간 공정위에서 몇 차례 감정평가 수수료 체계를 폐지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총리실 차원에서 지침이 내려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총리실과 공정위에서는 감정평가 수수료 체계가 가격 담합을 유도하고 불공정 경쟁을 야기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과거에도 이 같은 의견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강하게 요구한 적은 없어 해외 사례 조사 등을 통해 대응 방안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감정평가 업계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감평사는 “서비스 산업에 대한 인식이 후진적인 한국에서 자율경쟁에만 맡길 경우 감정평가 서비스의 질적 하락이 불가피하다”며 “협회 차원에서 감평사들의 의견을 모아 정부에 전달하는 방안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대 이유 보니, 감정평가 업계 질적 하락 우려=국토부와 감정평가 업계가 반대하는 이유는 수수료 체계 폐지가 감정평가 서비스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감정평가 업계의 인력 이탈과 질적 하락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수수료 기준 폐지가 ‘저가 수임 경쟁=>감정평가 품질 하락=>감정평가업체의 경쟁력 하락=>감정평가사 인력의 이탈=>업계 전체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회계감사의 경우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회계감사의 경우도 1999년까지는 외부 감사 대상 기업의 자산 규모와 사업장 숫자 등에 따라 보수 수준을 정하는 기준이 있었으나 카르텔 일괄정리법이 제정되면서 사라졌다. 이후 국내 회계감사 시장에서는 회계법인의 저가 감사 수주 경쟁과 이에 따른 인력과 투입 시간 감소로 회계 감사 품질 하락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최근 불거진 몇몇 기업들의 분식회계와 부실감사 문제도 이 같은 저가 수주에서 비롯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회계감사와 마찬가지로 공공적 성격을 띠고 있는 감정평가 서비스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수수료를 보장하는 체계가 존재해야 하며 자율경쟁 도입에 앞서 서비스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업계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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