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을 이틀 앞두고 경제 정책에 대한 파격적 변화를 주장해온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을 위협하자 국제금융시장이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떨고 있다. 열세를 보여온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미 대통령에 당선되면 세계 증시는 물론 외환시장에 폭풍우가 몰려올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우려 속에 전세계 무역 위축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지난달 28일 미 연방수사국(FBI)의 클린턴 ‘e메일 스캔들’ 재수사 공개 후 뉴욕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최근 9일 연속 하락했으며 시장의 ‘공포지수’는 70% 넘게 뛰었다.
뉴욕 월가의 증시 전문가들은 6일(현지시간)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 증시가 10% 이상 급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선 다음날인 9일이 ‘검은 수요일’이 되며 영국 가디언이 트럼프가 이기면 ‘새로운 암흑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언의 첫 희생양이 세계 증시가 될 수 있다.
바클레이스는 트럼프 당선이 확실해지면 S&P 500지수가 최대 13% 빠질 것으로 예측했다. 미 3대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트럼프가 승리하면 미국과 영국·아시아 증시가 10~15% 추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시장에 ‘팔자’ 주문이 쏟아질 것”이라며 “당선 직후 1∼2일 사이에 S&P 지수가 5∼10%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트럼프 당선시 글로벌 증시가 고점 대비 5%가량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클린턴의 승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주가에 이를 반영해온 증시는 ‘트럼프 리스크’ 확산에 이미 뒷걸음질치고 있다. S&P 500지수는 지난 4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0.17% 하락한 2,085.18로 거래를 마치면서 9거래일 연속 떨어졌다. 이는 1980년 12월 이후 36년 만의 최장기 연속 하락 기록이다. 공포지수로 증시와 반대로 움직이는 시카고옵션거래소의 변동성지수(VIX)는 같은 기간 73% 급등해 지난 6월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이후 최고치인 22.51을 보였다.
트럼프가 이변을 연출하면 외환시장도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인 일본 엔화와 스위스 프랑화는 강세를 띠고 달러는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엔화 환율이 달러당 99엔을 기록하며 100엔선이 붕괴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달러 약세에도 신흥국 시장 불안은 가중돼 트럼프가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한 멕시코 페소화는 25%가량 폭락할 수 있다고 브루킹스연구소는 내다봤다. 스웨덴 투자은행 SEB는 트럼프 당선시 원화 환율이 달러당 1,180원대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당선이 달러 약세와 함께 연준의 12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줄여 경제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지만 트럼프가 그동안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의 교체를 공언해온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연준 리더십 부재로 시장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트럼프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 무역전쟁을 벼르고 있어 달러 약세가 미 수출 증대를 이끌기보다 글로벌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시켜 증시와 외환시장의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됐다. 노무라증권은 “트럼프가 이기면 외환시장 변동성이 브렉시트 때보다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클린턴이 당선될 경우 S&P 500지수는 2∼5% 상승하고 연준의 12월 금리 인상 계획도 탄력이 붙어 달러화는 강세를 띠면서 미 국채 금리는 오를 것으로 예측됐다. /뉴욕=손철 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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