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2년 만에 자동차 번호판 체계를 손질한다. 지역감정을 완화한다는 명목으로 지난 2004년 지역번호판을 없앴지만 자동차 대수가 빠르게 늘면서 번호판 공급용량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급한 대로 기존 사용했던 번호판을 다시 사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지만 1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정부의 근시안적인 행정도 도마에 올랐다.
국토교통부는 30일 오전10시 해외건설협회 회의실에서 교통연구원과 학계·시민단체 등과 ‘자동차 번호판 용량 확대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토론회에는 모창환 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의 발제 후 김동규 서울대 교수, 임기상 자동차시민연합 대표 등 관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토론회 자료를 보면 2004년 지역번호판 폐지로 확보 가능한 번호 용량이 이전보다 10분의1 수준으로 대폭 축소됐다. 여기에 경찰단속 카메라의 인식 가능성을 고려해 한글 기호를 자음+모음 조합의 32개만 쓰도록 제한하면서 번호판 공급가능량은 총 2,100만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자동차의 신규 등록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약 154만대가 새로운 번호를 부여받았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이런 추세라면 몇 년 내에는 신규 자동차에 대한 번호판을 부여하기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 자동차 등록 대수가 1,629만대에 육박한다.
전문가들은 이에 번호판 공급물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폐차 번호판’을 재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등록번호의 용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카·커·코’ 등 한글 기호를 확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경찰청의 무인단속 카메라 기능을 높이는 데 1~2년의 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당장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미 휴대폰과 화물차 등 사업용 자동차는 기존 사용번호를 활용하고 있다. 다만 비사업용 자동차에 적용하려면 도난당한 번호판 등 향후에 분쟁이 예상되는 번호를 배제해야 하는 등의 까다로운 문제가 있어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중장기 대책으로는 한글기호 추가(카·커·코 등), 한글문자 2개로 확대(○○가나○○○○) 등의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토론회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달 중 기존 사용번호 활용을 위한 매뉴얼을 보완해 지자체 차량등록 담당자를 대상으로 교육할 것”이라며 “신규번호 소진 이후에도 신규등록이 차질없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사용번호 용량도 한계가 있는 만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번호판 체계를 검토하고자 이달 중순 연구용역을 공고한 상태”라고 말했다./세종=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