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왔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잘 몰라도 친구의 집이나 카페에서 만나곤 했던 빨간 말이 있습니다. 나무를 깎아 통통한 몸통의 말을 만들고 선명한 빨간색으로 칠한 뒤 그 위에 흰색·초록·노란·파란색으로 갈기나 덩굴무늬를 그려 넣은 이 말은 ‘달라호스(dala horse)’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달라호스는 스웨덴 달라르나 지방에서 오래전부터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물물교환의 수단으로도 사용되다가 점차 달라르나 지역, 나아가 스웨덴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습니다. 한국이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형토기’를, 중국이 ‘마답비연’이라는 청동상을 각각 자국의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사용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다만 아시아 문화권의 대표적인 ‘말’ 이미지들이 지배계층의 무덤에서 나왔다는 것과 달리 달라호스는 서민들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달라호스의 탄생 이야기는 무척이나 낭만적입니다. 길고 긴 북유럽의 겨울밤, 장작불 앞에 앉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위해 땔감 하나를 깎아 말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많은 대상 중 말을 장난감으로 만든 이유는 당시 스웨덴에서 말이 갖는 의미가 다른 어느 가축보다 컸기 때문입니다. 말은 겨우내 숲 속에서 통나무를 운반해주는 귀한 가축이자 사람들의 친구였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일을 돕는 말처럼 자신만의 작은 말이 갖고 싶었을 것이고 아버지들은 그런 아이들을 위해 나무말을 선물하기로 합니다. 아이의 손이 다칠까 염려해 아버지는 나무말의 표면을 수도 없이 깎고 다듬었겠지요. 그리고 그 위에 아이가 좋아할 만한 예쁜 색으로 칠하고 장식도 해줬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담겼으니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습니까.
스웨덴 몇 개의 마을에서 여전히 전통적인 수공업 방식으로 생산되는 달라호스. 천천히 자란 소나무 중에서도 조각에 적합한 최상급을 골라 깎고 다듬고 색칠하는 많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므로 세상에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는 이 깜찍한 말은 1623년 처음 판매되기 시작해 1937년 파리와 뉴욕 박람회 등에 소개되면서 대량으로 생산됐고 지금은 아이들의 장난감보다 전 세계 어른들이 좋아하는 장식품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올해 렛츠런파크에 등장을 예고한 개성 넘치는 여러 가지 말 캐릭터들도 달라호스 만큼이나 사람들에게 큰 사랑 받기를 기대해봅니다. /김정희(말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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