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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결정 과정 자세한 설명 있어야
종업원들 이해와 직결된 조직 의사결정
충분한 설명 없다면 수용과정서 반발 불가피
● 피해 입는 구성원들에 공감하는 자세 필요
e메일 통보 후 30분만에 해고 절차 등
대인간 정의 고려 안하는 기업 대다수
● 관리자 정보적·대인간 정의도 실현 노력을
분배적·절차적 정의에만 관심 가져
고비용 지출 없는 효율적 전략 고민할 때
지난해부터 인터넷과 각종 언론매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수저 흙수저' 논쟁의 기저에 깔린 것은 한국 사회 전반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한국 기업의 공정한 기업문화를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더불어 높아지고 있다. 기업 직원들은 임금·승진과 같은 결과물의 분배가 공정한지(분배적 정의), 그러한 분배를 위한 의사결정의 절차가 공정한지(절차적 정의), 의사결정에 대해 의사결정권자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었는지(정보적 정의),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사결정권자로부터 인간적인 배려와 대우를 받았는지(대인간 정의)의 네 가지의 공정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동안 한국 기업은 분배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여왔지만 정보적 정의와 대인간 정의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종업원들이 자신의 이해와 직결된 의사결정이 어떤 근거에 의해 이뤄졌는가를 알고 싶어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관리자들은 의사결정을 내린 후 종업원들에게 왜 그런 의사결정을 내렸는지 자세히 설명해줘야 한다.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한 기업이 회사 구내에서의 금연정책을 실시하기로 한 후 종업원 개개인의 건강과 기업에 끼치는 흡연 피해에 대한 자세한 통계·정보를 바탕으로 최고경영자가 금연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했을 때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종업원들이 금연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정보적 정의의 원칙에 의하면 종업원을 해고할 때 그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야 하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간과되는 사례가 많다. 미국의 한 전자기기 소매체인 업체는 수백 명의 본사 직원을 해고할 때 해고 당일 오전에 불과 18단어의 짧은 e메일로 해고 당사자에게 해고를 통보해 정보적 정의를 위배했다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일본의 한 유명기업은 수년 전 기업 내의 공용어를 일본어에서 영어로 전환하면서 일정 기간 내에 토익 성적을 일정 수준까지 향상시키지 못하는 종업원들은 인사상의 여러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왜 이렇게 사내 공용어를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 대부분의 일본인 직원들은 큰 불안을 느꼈고 심지어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들도 많았다.
그리고 의사결정이 이뤄진 후 피해를 입는 종업원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보이고 그 피해를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이러한 대인 간 정의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사례가 매우 흔히 나타난다. 앞서 언급한 미국 전자기기 소매체인 업체의 대량 해고의 사례에서는 해고 당사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해고 당사자들은 해고 당일 오전에 짧은 e메일을 받은 후 불과 30여분 안에 자신의 개인 물품을 모두 정리하고 동료직원들과 작별인사만 나누고 회사건물을 떠나야만 했다.
지난해 9월 우리 대법원은 흥미로운 판결을 내렸다.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종업원을 해고할 때는 해고의 사유와 해고 시점을 해고 당사자에게 공식 서류로 통지해야 한다. 하지만 한 기업이 공식 서류가 아닌 e메일로 해고 통지를 하자 법률소송이 진행됐으며 대법원은 해고의 사유와 시점을 명확하게 통지하기만 했다면 e메일도 공식 서류와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을 공정성의 관점에서 보면 대법원은 정보적 정의에만 초점을 둔 반면에 대인간 정의는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e메일을 통해 해고 당사자들에 대해 정보적 정의는 실현할 수 있지만 어떻게 그들에게 세심한 배려와 공감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공정한 기업문화를 위해서는 단순히 법률적 원칙의 준수뿐만 아니라 인간적 배려가 동시에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한국 기업 내에서의 정보적 정의와 대인간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많은 학술연구 결과가 전하는 메시지는 아주 명료하다. 의사결정권자는 의사결정 과정과 실행에 있어 그 의사결정이 왜 이뤄졌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노력을 해야 하며 그 의사결정에 의해 피해를 입는 종업원들에게 세심한 배려와 인간적인 대우를 해줘야 한다. 정보적 정의와 대인간 정의의 실현은 대규모의 투자나 공식적인 시스템 정비와 같은 고비용을 지출하지 않고서도 오로지 관리자들의 적절한 행동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공정한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전략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최재필 성균관대 MBA SKK GSB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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