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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7월 25일] 멕시코산 곱창을 즐긴 비애
입력2008-07-24 16:45:57
수정
2008.07.24 16:45:57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호주산 갈비탕을 시켜 먹고 멕시코산 곱창을 즐겼다. 캐나다산 돼지뼈 해장국도 셀 수 없이 먹었다. 모든 음식점에 원산지표시제가 확대 시행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음식점을 찾을 때마다 이전과 다른 감정을 갖게 된다. 크게 세 가지다. 우선은 놀람이고 그 다음은 배신감과 같은 분노, 그리고 불신이다.
충무로에 있는 D식당은 전통이 있고 가격도 만만치 않아 거기서 파는 쇠고기는 당연히 한우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원산지표시제가 시행된 뒤 등심 메뉴판에는 한우가 아니라 국내산 육우라고 표시돼 있다. 육우는 쇠고기 생산을 위해 외국에서 종을 수입, 국내에서 기른 소로 한우와는 전혀 다른 고기다. 육우에다 다른 종을 섞은 교잡종도, 송아지를 낳은 경험이 없는 젖소도 육우로 분류된다.
여기서 파는 불고기와 갈비찜은 호주산이고 곱창은 멕시코산이다. 돼지 항정살은 캐나다산으로 표시돼 있다. 한마디로 다국적 메뉴판이다. 왠지 속았다는 기분이 들어 그 식당에는 발길을 끊었다.
돼지뼈를 사용하는 음식점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부지기수가 캐나다산을 사용한다. 국내산은 다 어디로 갔는지 찾기가 힘들다. 아직 원산지를 표시할 의무가 없어 특별한 설명 없이 팔고 있을 뿐이란다.
즐겨 찾는 뼈해장국집 주인은 단골이라서 그랬던지 “돼지고기는 12월부터 원산지표시제가 적용되는 만큼 그때 가서 캐나다산이라고 표시할 계획”이라고 귀띔해줬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불쾌한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원산지표시제가 도입됐으니 이제는 됐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음식점마다 파는 고기에 원산지가 표시돼 있어 그것을 보고 선택하면 된다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영 찜찜하다. 그래서 물어본들 마찬가지다. 한우라고 적어놓고 “사실은 호주산인데요”라고 말할 곳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막막해진다. 거래내역서나 구매 영수증을 보여달라고 했다가 행여 멱살을 잡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설령 용기를 내서 보여달라고 해본들 그 고기가 그 고기인지 알 수도 없다.
물론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다. 오는 12월부터 식육을 수입ㆍ가공ㆍ판매하는 업체는 고기를 팔 때 매입자에게 의무적으로 거래명세서를 제공하고 내년 6월부터는 쇠고기 이력추적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여기에 허위판매에 대한 처벌도 강화하고 점검 및 감시인력도 대폭 보강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많은 음식점에 대한 감시와 관리가 쉽지 않을 뿐더러 소비자들이 내용을 일일이 알기도 어렵다. 더욱이 쇠고기뿐 아니라 쌀에 대해서도 원산지표시제가 시행되고 있고 연말에는 배추김치와 닭고기ㆍ돼지고기에도 원산지표시제가 도입돼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복잡해진다.
단속도 좋지만 오히려 지자체들이 모범음식업소를 선정하듯 모범 원산지표시 음식점을 지정해나가는 게 어떨까 싶다. 그러면 소비자들은 그곳에서만이라도 원산지에 대한 불신을 털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원산지표시가 의무 사항이라 다 지켜야 하지만 실상은 그러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그런 음식점을 인터넷에 공개해 손님이 몰리게 하면 음식점에도 충분한 메리트가 생긴다. 여기에 세금감면과 같은 다른 인센티브를 주면 더 좋겠다. 그러면 단속할 때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보다 메리트를 얻기 위해서라도 음식점들의 참여율이 높아질 수 있다.
또 원산지 검사를 할 때마다 인증서를 줘 이를 음식점들이 손님들에게 홍보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무런 메리트 없이 갑자기 법을 확대해 안 지키면 처벌한다고 하면 음식점도 불만을 가질 게 아니겠는가 말이다. 결코 단속만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 정착시켜나가는 게 멕시코산 곱창을 국내산 곱창으로 알고 즐겨 먹었던 억울함을 줄이는 길이 아니겠는가. 그런 억울함을 가진 사람이 어디 필자 한명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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