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87은 묘수였다. 우변의 백대마와 우하귀 방면의 백대마를 동시에 노리는 기상천외의 묘수. 검토실은 술렁거렸다. “자칫하다가는 어느 한쪽 백대마가 잡힐지도 모릅니다. 물론 양쪽을 다 살릴 수도 있지만 상당한 출혈을 해야 하고 그것으로 바둑은 결판이 날 겁니다.” 고마쓰 히데키가 이렇게 말하자 검토실에 들어와 있던 기자 하나가 물었다. “결판이 나다니요. 고바야시 사토루가 이겨서 명인 타이틀을 따낸다는 뜻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30분을 고민하던 장쉬가 백88로 받았다. 상하의 백을 동시에 돌보는 최선의 응수였다. 그러나 흑91, 93으로 백진의 일각이 무참하게 무너졌다. “참화는 면했지만 백이 중상을 입고 말았습니다.”(고마쓰 9단) 만약 백이 실전보의 88로 두지 않고 참고도1의 백1로 받으면 흑2 이하 흑6으로 아랫쪽 백대마가 잡힌다. “지고 마는구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장쉬) 흑87을 당했을 때의 느낌을 후에 장쉬가 솔직히 말했다. 한편 사토루는 흑95를 두면서 승리를 예감했다고 한다. 그러나 흑95를 두기 전에 반드시 치러둘 수순이 있었다. 참고도2의 흑1을 먼저 두어 백2를 응수시켜야 했던 것이다. 백100을 두게 되어 장쉬가 일단 한숨을 돌린 모습이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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