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 연인서 이젠 국정 조언자로… 거침없는 행보<br>대통령 자문위원 위촉등 인사·외교정책 깊숙히 관여<br>에이즈 대사등 국제무대서 구호·인권활동에도 힘써<br>교황 메세지에 정면 비판… 소신있는 영부인 역할도
 |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 카를라 브루니 여사가 작년 6월 이스라엘 의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각자 손을 입에 대고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브루니는 남편과 함께 여러 국가를 방문하면서 최근 질병^인권 등 국제현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예루살렘=블룸버그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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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1년반 정도 지난 카를라 브루니(41)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54) 대통령의 의사결정 과정에 깊숙히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 다시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각종 국제행사에 영부인 자격으로 참석해 빼어난 미모를 바탕으로 세련된 패션감각과 품위있는 매너를 선보이며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얻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단지 대통령을 내조하는 고전적인 영부인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가수로서의 삶을 병행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바탕으로 에이즈 문제 등 국제적 이슈와 프랑스 정치 현안에도 직간접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르코지의 연인에서 아내로 그리고 이제는 정치적 조언자로 변신한 카를라 브루니. 그가 프랑스 정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아본다.
◇우파 남편과 좌파 아내 = 사르코지 부부에 대해 뜸해져 갈 대중적 관심이 다시 집중된 것은 지난달 26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조깅도중 쓰러지면서부터. 영국 일간 더 타임스 온라인판은 지난 2일 사르코지가 쓰러진 것은 카를라 브루니여사의 다이어트 채근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부르니는 최근 사르코지에게 파리와 이탈리아의 유명 연예인들과 예술가들을 소개해 주면서 한층 세련된 매너와 몸매관리에 신경을 쓰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사르코지는 브루니의 진정한 남편이 되기 위해 독하게 마음 먹고 좋아하던 초콜릿과 패스트리, 아이스크림도 끊고, 뱃살을 빼기 위해 무리한 운동을 하다가 결국 졸도하는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브루니가 주로 소개해 주는 사람은 대부분 좌파 아니면 극좌파 인사로 알려져 있다. 지난 6월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조카인 프레데릭 미테랑을 신임 문화부 장관에 임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브루니의 아들 오렐리앙의 친아버지로 그와 연인 관계였던 철학교수 라파엘 앙토방을 대통령의 비공식 자문단의 위원으로 위촉한 것도 그의 강력한 입김 때문이었던 것으로 관측됐다.
대통령 문화분야 자문역으로 선임된 영화제작자 마렝 카르미츠 역시 유명한 마오주의자(Maoist)로 알려져 있다. 브루니는 자신을 "태생적 좌파"라고 밝힌 바 있고 이미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사교계에서 다양한 정치, 문화, 예술계의 좌파 인사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화려한 모델생활을 거쳐 영부인까지 오른 이가 태생적으로 좌파라는 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일부의 지적도 있다. 때문에 프랑스 언론들은 브루니와 그의 친구들을 고급 레스토랑에서 캐비어를 먹으면서 좌파 이념을 논하는 '캐비어 좌파'라고 비꼬기도 한다.
◇ 이탈리아 기업가문 출신의 브루니 = 카를라 브루니는 원래 이탈리아 기업가문 출신이다. 1967년 12월 23일 '카를라 질베르타 브루니 테데스키'란 이름으로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1920년 타이어 생산회사 CEAT를 설립해 운영했으며 브루니는 이 기업의 상속녀였다. 아버지는 기업가이면서 클래식음악 작곡가, 수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었고 어머니도 콘서트 피아니스트였다.
브루니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등을 공부하며 음악적 소향을 키웠다. 그는 패션잡지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부모님은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분들은 아니었지만 돈의 힘에도 관심이 없었다"며 "그건 아마 부모님이 예술가여서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1970년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타이어 생산업체인 피렐리에 기업을 매각하고 1975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다. 브루니는 대학에서 예술과 건축을 전공하게 됐지만 당시 모델이었던 오빠 여자친구의 권유로 모델에 도전, 1987년 19살에 게스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패션계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그는 크리스티앙 디오르, 지방시, 존 갈리아노 등 세계적 디자이너의 모델로 활동하면서 1990년대 최고 전성기를 맞았으며 고수입 모델 순위에서 20위 안에 들기도 했다. 이 때 브루니는 톱모델로서의 인기를 업고 롤링스톤즈의 리드싱어 믹 재거,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 등 당대 최고가수들과 사귀었다.
브루니는 1997년 작사가로 활동하다 가수로 변신, 2002년 1집 'Quelqu'un m'a dit'(누군가 내게 말했어)를 냈다. 그의 섹시한 목소리가 어필하면서 유럽에서 2백만장 이상 팔리는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이후 2007년 2집에 이어 2008년엔 영부인 신분으로 3집 'comme si rien n'etait'(아무일 없었던 것처럼)을 발매했다. 앨범 수익금 23만8,000유로는 아이티 어린이들을 돕는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똑 부러지고 소신있는 영부인 =브루니는 일간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나는 정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공표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인사 및 외교 정책에 상당히 관여하고 있다고 프랑스 안팎에선 관측한다.
올 2월 프랑스 정부가 이탈리아 적색여단 소속 테러리스트들의 본국 강제송환을 당초 약속과 달리 거부한 데에도 브루니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분석했다.
브루니는 국제무대에서 구호활동 및 인권운동에 힘쓰고 있다. 그는 작년 12월 '에이즈ㆍ결핵ㆍ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국제기금'의 국제대사로 임명되어 에이즈 예방 및 퇴치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는 이탈리아가 에이즈 퇴치 기금에 1억1,000만유로를 기부하기로 했으나 2009년 예산에서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며 지난 2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직접 비판하기도 했다. 또 국제 정치무대에서도 아웅산 수치의 즉각 석방을 촉구하며 미얀마 군사정부를 압박했고 콩고민주공화국의 성폭행 피해여성 지원을 호소하는 활동을 벌였다.
그는 소신있는 목소리는 교황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콘돔 사용이 에이즈 예방에 도움이 안 되고 문제를 더 확산시킬 뿐"이라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발언에 대해 한 여성잡지과의 인터뷰에서 "가톨릭 교회가 교리상의 이유로 콘돔사용을 제한, 아프리카 등지에서 피해를 입히고 있다"면서 "교황의 메시지는 아주 해로운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정면 비판했다.
당시 교황의 '콘돔사용 제한' 발언 역시 문제였지만 가톨릭 국가의 영부인이 교황을 직접 비판한 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던 일로 기록됐다.
앞으로도 브루니의 당당하고 소신있는 행보는 계속될 전망이다. 브루니가 평소 "저는 여성이 독립적이 되는 게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해요"라고 밝히고 있듯 그의 당찬 도전 정신은 사르코지 대통령을 부인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놔 두지 않을 것이란 게 프랑스 정가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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