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2월10일, 미국 전역의 자동차 생산라인이 완전히 멈췄다. 군수물자 생산을 위한 설비교체 때문이다. 근거는 전시생산위원회의(WPB)의 ‘행정명령’. 초법적인 명령은 지켜졌을까. 철저하게 시행돼 미국 자동차 업계는 어떤 단일업종보다 많은 무기를 토해냈다. 370만대의 군용 지프와 트럭은 물론 항공기용 폭탄의 87%, 철모의 85%, 항공기용 엔진의 75%, 탱크의 57%, 카빈 소총의 56%, 선박용을 포함한 디젤 엔진의 47%, 기관총의 46%가 자동차 회사에서 나왔으니까. 종전까지 미국이 생산한 민수용 자동차가 단 37대에 그쳤다는 사실은 일사불란한 전시생산체제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고통은 없었을까. 있었다. 시민들은 부품부족에 시달렸다. 특히 타이어의 구멍을 수십번씩 기워서 사용하는 불편을 겪었다. 주요 생필품도 배급제에 따른 부족사태를 겪었으나 불만은 크지 않았다. 애국심이 작용한데다 근본적으로 호황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생산 극대화는 실업해소를 넘어 가사에 종사하던 여성인력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줬다. 미국인들의 실질소득은 전쟁기간 중 27%나 늘어났다. 미국의 공업력은 연합국의 승리도 이끌었다. 소련의 스탈린이 테헤란회담 만찬에서 ‘미국의 생산능력을 위해!’라는 건배사를 제창했을 정도다. 전쟁 덕에 지긋지긋한 대공황을 탈출할 수 있었다는 기억 때문일까. 작금의 세계적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길 역시 전쟁에 있다는 논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과연 그럴까. 천만의 말씀이다. 경제난 해결의 만능키였던 전쟁은 거꾸로 경제난의 요인이다. 이라크 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핵 미사일 발사단추 몇 개만 누르면 인류는 더 이상 존재할 수도 없다. 전쟁 시절과 버금가는 고통분담과 협력만이 위기탈출에 도움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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