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경제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재정위기 속에서도 든든히 버틸 수 있는 비결은 기계ㆍ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고부가가치 제조업에 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강한 제조업을 일으키는 기관차 역할을 해온 것은 전시ㆍ컨벤션 산업이다. 전시ㆍ컨벤션 산업은 1차로 운영과 직접 관련된 설비ㆍ디스플레이ㆍ디자인ㆍ경영컨설팅ㆍ물류ㆍ경비 등의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관광ㆍ레저ㆍ숙박ㆍ문화체험ㆍ통신ㆍ교통ㆍ출판ㆍ광고 등에 막대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미치는 종합서비스 산업이기도 하다. 기계류ㆍ부품ㆍ소재 등 제조업 분야의 신제품을 홍보하고 지식과 정보의 생산ㆍ유통을 촉진함은 물론 해당 산업 분야의 신기술 경연장으로서의 기능도 한다. 또한 관광객 유입으로 토착산업을 활성화하는 등 지역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는 중요한 경제활동이며 복합적인 도시서비스 산업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경쟁력 못 갖추면 중국에 시장 뺏겨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전시ㆍ컨벤션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해 이를 MICE(Meetingㆍ회의, Incentivesㆍ포상관광, Conventionㆍ컨벤션, Exhibitionㆍ전시 분야를 포괄하는 서비스) 산업으로 지칭하고 각종 국가적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MICE 산업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한국기계산업진흥회가 국내 전시사상 최대 규모로 주최한 제1회 한국산업대전도 이 같은 목적 아래 성황리에 치러졌다.
글로벌화와 더불어 전시ㆍ컨벤션 산업에도 국가 간 경쟁이 가속화돼 우리 전시ㆍ컨벤션 산업도 무한경쟁에 노출돼 있다.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성장일로에 있는 중국 전시ㆍ컨벤션 산업에 흡수돼 주변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최근 '굴뚝 없는 황금 산업'으로 불리는 MICE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채택, 5년 안에 이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찬 발표를 했다. 이미 상하이 홍차오 공항 인근에 킨텍스 5배(50만㎡) 크기의 세계 최대 전시장을 오는 2014년 완공 목표로 건설하고 있다.
전시ㆍ컨벤션 산업은 관련 산업에 혁신요소를 불어넣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막대한 외화 획득과 세수 증대를 가져오는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다. 실제로 지난 4월23일 독일에서는 기계 분야의 세계 최대 산업박람회인 '하노버 메세'가 개최됐다. 하노버는 매년 봄이 되면 인근 숙박ㆍ관광업계가 세계 70여개국에서 몰려오는 20만여명의 참가자와 관람객으로 큰 호황을 누린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지난 60여년간 MICE 산업과 기계류ㆍ부품 등 고부가가치 산업이 상승작용을 하며 오늘날 강력한 독일 경제 건설에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기술과 산업의 융복합화 시대에 우리 전시ㆍ컨벤션 산업도 기계류ㆍ부품 등 고부가가치 제조업과 어우러져 무역 2조달러 경제를 열어가는 산업 정책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돼야 한다. 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나가려면 전통문화ㆍ관광산업과의 융복합화가 필수적이다.
쇼핑·관광·K팝 공연 등과 연계를
우리나라 전시회도 혁신기술 경연장, 신상품 소개의 장을 넘어 낮에는 출품된 전시품을 둘러보며 상담하고 저녁에는 인근 백화점ㆍ쇼핑몰이나 K팝 공연과 연계해 한류를 경험하게 하면 어떨까.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와 연계해 시너지 효과도 노려볼 만하다. 아울러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해 연간 30억명이 넘는 일본ㆍ중국 관광객 중 1%를 유치, 우리 전시회와 연계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단순한 제품 전시회를 넘어 한류 바람을 타고 국제경쟁력을 가진 차별화된 발전전략, 산업ㆍ문화가 융복합된 전시회가 필요하다. 중국 등에 전시 관련 시장을 빼앗기고 뒤늦게 한탄하지 않으려면 지식경제부ㆍ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당국은 물론 전시 주최기관과 한국관광공사ㆍ지방자치단체 등 유관기관의 전략적 협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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