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때문에 경영실적이 엄청나게 좋아졌다고 할 수도 없고….’ 국내 정유사들이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2ㆍ4분기 실적발표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2ㆍ4분기 실적을 잠정 집계하니 지난 2004년 이후 최대 실적을 올린 것. 자칫 국민들이 유가 폭등으로 받는 고통비용을 정유사들은 오히려 현찰로 챙겼다는 빈축을 살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당초 정유사들은 연초부터 이어진 국제 원유가 급등 행진으로 경영실적이 극히 나빠질 것이라고 엄살을 떨었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4사는 올해 2ㆍ4분기에 2004년 이후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전문가들은 SK에너지의 2ㆍ4분기 이익 규모가 6,000억~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GS칼텍스와 S-OIL도 SK에너지 못지않은 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고도화설비(중질유분해시설) 비율이 높은 GS칼텍스와 S-OIL은 이익률이 매출액의 10%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유사들은 고유가로 전국민이 고통을 받는 가운데 기록한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릇.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도 최근 사내방송을 통해 “5월 석유제품이 선박에 이어 두번째 수출 효자상품으로 기록됐지만 많은 국민들은 고유가에 비싼 기름을 팔아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위기감 속에 일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정유사들은 지난해 말부터 ‘고유가 시대에 편승해 석유제품을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니냐’는 식의 곱지않은 시선에 대해 “석유제품 가격은 국제시세에 연동돼 있으며 최대한 양보할 수 있는 마진폭은 휘발유 리터당 30~40원에 불과하다”는 논리로 대응해왔다. 실제로 1ㆍ4분기에는 시장에서 ‘어닝쇼크’로 받아들일 정도의 저조한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유사들이 2ㆍ4분기 들어 갑자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이유는 뭘까. 경유와 등유 국제시세가 3~4월 이후 폭등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1월 평균 배럴당 105.7달러이던 국제 경유시세가 4월 138.34달러, 5월 158.62달러를 기록하더니 6월에는 166.45달러로 형성됐다. 등유도 1월 106.19달러 하던 것이 6월 평균 시세는 배럴당 164.88달러를 기록했다. 시장환경이 이렇다 보니 벙커C유를 휘발유, 등ㆍ경유로 재분해하는 중질유분해시설의 마진폭이 커졌다. 국내 정유사들의 단순정제(상압정제) 마진은 1월 배럴당 -3.80달러에서 6월 -4달러 이상으로 깊어졌지만 고도화설비를 돌려 얻는 마진(크래킹마진)은 1월 배럴당 34.49달러에서 6월 70.98달러로 두 배 이상 늘어 적자요소를 메우고도 한참 남는다. S-OIL의 한 관계자는 “국제 석유제품 시장이 휘발유, 경ㆍ등유 등 경질유 중심으로 재편될 것을 예상하고 고도화설비에 미리 투자한 것이 효과를 본 것”이라면서도 “정유사들이 수출을 많이 해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것보다는 국내 소비자에게 과다한 이익을 취한다는 오해가 확산된 상태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유사들은 여론이 부담스러운 나머지 2ㆍ4분기 회계에 각종 비용을 최대한 반영시켜 이익폭을 줄여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유사 관계자의 대외협력 담당자는 “업계의 대부분 공장이 감가상각이 끝난 상태이고 임직원 성과급 시즌도 아니라 반영시킬 비용도 별로 없다”면서 “실적발표 후 여론 대응책을 고민하느라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시장전문가는 “정유업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규제와 보호를 동시에 받는 독과점 사업”이라며 “최근의 경영실적 역시 큰 틀에서는 독과점이 주는 시장의 수혜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이 즈음 국내 소비자들에게 고유가 고통을 경감할 수 있는 성의를 표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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