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떼돈 벌던 곳에서 '날벼락' 맞은 한국
중동 건설시장 '유로콘' 역습유로화 약세 업고 저가공세한국업체 제치고 잇단 수주올 700억弗 목표 차질 우려
진영태기자 nothingman@sed.co.kr
서울경제 DB
현대건설은 지난 6월 아랍에미리트(UAE)의 한 플랜트프로젝트 입찰에서 이탈리아 다니엘리사에 져 고배를 마셨다. 연산 140만톤 규모의 철강플랜트 확장사업을 따내기 위해 그룹 계열사인 현대로템ㆍ현대엠코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지만 다니엘라의 저가공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국내 건설사들이 2000년대 이후 수주의 독무대로 여겼던 중동 건설시장에서 유로콘(유럽 대형 건설사ㆍEuro-Con)의 거센 반격에 부딪쳤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유로화 약세로 현지 건설업체들이 잇따라 한국 업체들을 제치고 중동 플랜트 시장에서 최저가 낙찰자로 선정되고 있다.
UAE 철강플랜트 외에도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석유화학 콤플렉스 프로젝트 내 3개 패키지 수주전에서 한국 업체들은 스페인 최대 건설사인 테크니카스리유니다스사의 저가공세에 밀려 빈 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지난달 바레인 국영 정유회사인 밥코가 발주한 시트라 정유공장 유황회수시설 프로젝트 역시 국내 업체들을 따돌리고 최저가격을 써낸 이탈리아의 테크니프사가 차지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2~3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건설사가 유럽 업체들에 비해 10% 정도의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최근 유로화 약세로 이 같은 메리트가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유럽 건설사들이 이처럼 중동시장에서 가격공세를 펴는 것은 유럽 재정위기로 내수시장이 침체된데다 유로화 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1유로당 달러 환율은 지난해 5월 1.48달러에서 8월 현재 1.23달러로 15%나 가치가 떨어졌다. 유럽 건설사들로서는 그만큼 가격경쟁력이 생긴 셈이다.
2010년 상반기에도 유로화 가치가 달러 대비 1.19달러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국내 건설사들은 중동지역 수주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UAE 샤 가스전 개발공사 6개 패키지 입찰에서 국내 건설사들은 이탈리아 사이펨과 스페인 TR에 참패를 당한 경험이 있다.
허문욱 KB증권 건설ㆍ플랜트 담당이사는 "국내사들의 텃밭인 중동시장에서 유럽 건설사들이 유로화 약세 등을 이용해 저가 입찰하는 사례가 최근 자주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계 업체들에 시장을 잠식당하면서 해외수주 확대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올 들어 현재까지 해외건설 수주액은 339억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11% 늘었지만 일회성 수주로 평가되는 한화건설의 이라크 신도시건설사업(80억달러)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지난해의 60%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유럽계 업체와 부딪치고 있는 중동지역에서의 수주가 업계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올 들어 현재까지 중동지역 수주액은 126억달러(이라크 신도시 제외)로 전년동기(189억달러)의 67% 수준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와 업계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이 없다면 당초 목표로 삼았던 700억달러 해외수주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국내 건설업계가 하반기 중동에서 많은 수주를 올려온 만큼 속단하기에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해외건설협회의 한 관계자는 "이달 라마단 기간이 끝나면 대규모 수주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지난해 수주액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