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와 미국 증시 폭락으로 힘겹게 지켜온 코스피지수 1,700선이 마침내 무너졌다. 시장에서는 이제 유일한 희망이 기관, 특히 투신권의 매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지난 2~3년간 외국인의 계속된 매도공세 속에서도 국내 증시가 버텨온 것은 투신의 꾸준한 수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전반적인 경기 하향 기조에서 단순히 투신의 ‘사자’만을 기다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투신, 증시 하락 버팀목=외국인의 끝없는 투매 공세 속에서도 투신은 이번주 내내 ‘사자’세를 펴왔다. 최근 13거래일 중 10거래일간 계속된 순매수세다. 투신은 이번주 들어 8,448억원어치 주식을 사들이면서 외국인의 매도공세를 버텨내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자금 여건도 여타 주체보다 상대적으로 낫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으로 6월 한달간 국내 주식형펀드에 1조3,902억원의 자금 순유입이 이뤄졌다. 증시 부진에 따라 저가매수를 노리는 펀드 자금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투신이 펼 수 있는 운신의 폭도 커진 것이다. 그러나 투신의 매수세를 찬찬히 뜯어보면 공격적인 ‘사자’보다는 철저하게 몸 사리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1ㆍ4분기 ITㆍ자동차 등 수출주 위주로 주도주를 형성해가며 매수를 이끌어갔던 것과 달리 최근 들어서는 밸류에이션 메리트 이외에는 뚜렷한 기조를 찾아볼 수 없다. 최근 한 달간 투신 순매수 상위종목 자리에는 TIGER200ㆍKOSEF200ㆍKODEX200 등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차지하고 있다. 삼성화재ㆍ국민은행ㆍ삼성SDIㆍLG화학ㆍ대한항공 등도 뚜렷한 상승 모멘텀이 있다기보다는 낙폭이 과대하다는 밸류에이션 매력이 있을 뿐이다. 김영일 한국투신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펀드 자금 유입에 따라 일부 주식편입이 이뤄지는 것일 뿐 아직 실질적으로 투신 자금이 움직인다고 볼 수는 없다”며 “ETF 등 인덱스펀드와 프로그램 매수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시장에 들어간 자금 규모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신, 공격적 매수는 당분간 힘들 듯=증시 전문가들은 당분간 투신권이 적극적인 매수에 나서긴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저점을 찾기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최순호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기관이 5거래일 연속 매수를 펴고 있지만 장 막판 저가 매수 형태로 개입할 뿐 적극적인 매수에는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글로벌 증시 불안과 국내 경기회복에 대한 우려감이 당분간 변동성 장세가 이어지는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상현 CJ투자증권 연구원도 “주도주 부각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투신이 막상 주식을 사고 싶어도 공격적인 매수에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일부 저가 매수세가 들어올 여지는 있지만 지금으로선 수급 여부보단 경제 전반에 드리워진 여러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게 우선”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수급 모멘텀이 부재한 현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실적 위주의 종목 압축이다. 소비재와 IT업종에 대한 추천이 이어지고 있다. 서동필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개별 기업의 실적을 근거로 한다면 1,700선 밑은 매수 구간”이라며 “경기위축에도 불구하고 호실적이 예상되는 경기소비재나 전기전자섹터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주문했다. 강수연 대우증권 연구원도 “불확실성이 높아질 땐 외부변수에 강한 종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지수 조정 시 견조한 흐름을 나타내는 경기방어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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