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봄에 겨워 느른한 섬진강변에 연분홍 불이 났다.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 섬진강 기차마을에서부터 가정역에 이르는 17번 국도 10㎞ 구간에 불을 지른 방화범은 만개한 철쭉 군락이다. 절정으로 치닫는 봄 속을 달리던 차들이 연분홍 빛깔에 겨워 멈춰 서고 그 줄은 시나브로 장사진을 이룬다.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내려 휴대폰 안에 잔인한 4월을 철쭉꽃과 함께 주워담았다. 산 깊고 물 맑은 곡성은 지금 연둣빛 신록과 철쭉의 분홍빛을 뒤집어쓰고 봄의 한복판으로 치닫고 있다.
◇동악산 청계동 계곡=높이 736m의 동악산은 높지 않은 산세에도 불구하고 예부터 삼남 제일의 암반계류라 불렸다. 전라북도에 속하는 순창·남원과 접경한 곡성의 진산인 동악산은 두 개의 봉우리가 남북으로 놓여 있는데 두 봉우리 사이에는 배넘이고개가 남북 봉을 구분하고 있다.
동악산 청계동 초입에 차를 세우고 20분쯤 걸어 들어가니 청계동 계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높지 않은 산, 깊지 않은 계곡임에도 암벽을 흘러내리는 폭포는 왜 이곳이 삼남 제일의 암반계류라 불리는지를 설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동행한 문화관광해설사 정숙희씨는 "청계동 계곡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양대박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훈련 시키던 곳이라고 전해진다"며 "동악산(動樂山)의 가운데 글자는 즐거울 락(樂)인데 '악'자로 읽는 까닭은 원효대사가 열일곱 차례나 성출봉을 오르내리면서 아라한 석상들을 길상암에 모셔놓은 다음부터 육시(六時·불교에서 하루를 여섯으로 나눈 염불독경의 시각)만 되면 천상에서 음악이 들려 온 산에 퍼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리 품을 적게 팔고도 암반계류 경치를 완상할 수 있는 곳이다. 곡성읍 신기리 산 190-1.
◇17번 국도변 섬진강=전라북도에 속한 순창·남원과 전라남도의 곡성을 경계 짓는 섬진강은 지역의 젖줄이자 관광의 보고다. 곡성군 내 36㎞ 구간을 흐르는 섬진강은 강줄기를 따라 레일바이크의 출발지인 침곡역, 기차마을, 압록유원지, 오토캠핑장 등을 두루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진안군 팔공산 옥녀봉에서 발원하는 섬진강은 임실·순창을 거쳐 옥과천과 합류하고 곡성읍 동산리에서는 남원에서 내려오는 요천수와 몸을 섞는다. 수량이 풍부해진 강물은 또다시 오곡면 압록리에서 보성강과 합쳐지며 구례와 하동의 목마른 평야를 적시며 남해로 빠져나간다.
섬진강이 곡성군을 경유하는 거리는 36㎞. 섬진강 유역과 지천에는 크고 작은 골짜기가 많아 풍광이 아름답고 강변을 따라 자전거하이킹 코스가 뻗어 있어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기차마을=기차마을은 군 단위 지자체가 꾸민 위락시설치고는 갖가지 콘텐츠가 풍부한데다 조경도 아름다워 드라마나 영화 촬영세트로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증기기관차(외형은 증기기관차지만 동력은 엔진으로 얻고 있음)는 관광객들을 위해 섬진강기차 마을과 가정역 사이에 폐기된 철도 위를 오가고 마을 안에는 새마을호 12량을 리모델링해 숙소로 꾸민 레일펜션 등 편의시설이 마련돼있다. 기차마을 안에 있는 1004장미공원도 볼만하다. 1004라는 이름은 이곳에 식재돼 있는 장미의 종류가 1,004종이나 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며 이곳에서는 한 그루에 30만원을 호가하는 희귀 장미도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장미가 아니라 철쭉 때문이다. 17번 국도변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철쭉을 왼편에 두고 침곡역에서 가정역까지 10㎞ 구간을 페달을 밟으며 레일바이크를 달리노라면 세상이 온통 분홍빛으로 물든 것 같은 황홀경에 빠지고 만다. 오곡면 기차마을로 232.
◇심청전 발상지 곡성=옛날 충청도 대흥현에 살던 맹인 원량은 처를 잃고 홍장이라는 딸과 함께 살고 있는 홀아비였다. 어느 날 홍법사 성공스님이 부처님의 계시라면서 시주를 간청하자 이 딱한 노인은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수족 같은 딸 홍장을 딸려 보냈다.
성공스님을 따라 나선 홍장이 소랑포에서 쉬고 있을 때 진나라 황제가 황후 간택을 위해 파견한 사신 일행을 만나게 되었다. 진나라 황후가 돼달라고 간청하는 사신들에게 홍장은 예물로 가져온 금은보화를 모두 스님께 드리게 하고 사신들을 따라 진나라로 건너가 진나라 혜제의 황후가 되었다. 황후가 된 홍장은 고국에 두고 온 부친을 잊지 못해 관음상을 만들어 바다 건너 고향으로 보냈다. 관음상은 표류 끝에 낙안포에 나온 성덕처녀의 수중에 들어갔고 성덕처녀는 그 관음상을 업고 고향인 곡성으로 와서 관음사를 지었다. 딸을 보낸 원량은 홍장과의 이별로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서 눈을 뜬 후 95세까지 복을 누렸고 성공스님은 홍장에게 받은 예물로 불사를 마쳤다고 전해진다.
효녀 홍장 이야기는 곡성 관음사의 관음신앙과 이어지면서 호남 지역에서 전승되다가 1729년 책으로 정리되고 목판본 '옥과현성덕산관음사사적'으로 발행되면서 알려지게 됐다.
실제로 옛날 곡성 지역에서는 광산이 있어 금붙이가 생산됐다. 이 때문에 중국상인들이 섬진강을 타고 금을 사러 곡성까지 올라왔다가 이 지역 처자들을 사가는 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때 끌려가던 처녀들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해서 한때는 곡성의 곡자를 '哭(울음 곡)'자로 표기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곡성군에서는 이 같은 설화를 바탕으로 심청이야기마을(오곡면 심청로 178)과 심청효문화센터(오산면 오산로 254-4)를 조성, 운영하고 있다. 이야기마을은 한옥숙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효문화센터에서는 도자기체험·염색교실 등 다양 프로그램을 구비해놓고 있다.
여행수첩 |
/곡성=글·사진 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