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의 전쟁의 신 아레스가 돌아온 것인가. 휴전 60년째인 한반도에 갑자기 전쟁의 위기가 감돌고 있다. 북한은 유엔의 대북 제재안에 반발해 정전협정 백지화와 판문점 대표부 활동 중지를 했다. 도발 시엔 '제2의 조선전쟁'을 불사하겠다며 군을 '전투동원태세'로, 다시 '전시태세'로 바꾸고 있다. 한국 내에서도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그동안 금기시했던 핵무기 개발론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선 전쟁의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군 당국자들도 도발 시엔 도발 원점과 지휘 세력까지 응징하겠다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서로 간의 엄포성ㆍ경고성 말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서로 물러설 수 없는 대치 상황으로 치닫는 기분이다.
세계사엔 이런 일촉즉발 위기의 순간들이 많았다. 1962년 미소 간에도 쿠바의 미사일을 둘러싸고 핵전쟁의 위기가 있었다. 10월16일부터 28일까지의 '쿠바 미사일 위기' 13일 중 특히 27일은 '검은 토요일(Black Saturday)'로 불린다. 정말 숨넘어가는 위기의 순간을 일컫는 말이다. 미국의 첩보정찰기가 쿠바에 건설 중인 미국을 향한 미사일기지를 포착하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위기는 시작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22일 대국민연설을 하고 쿠바를 향한 모든 선박에 해상 봉쇄를 했다.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쿠바 공습과 침공, 소련의 대응 시 소련 본토에 대한 핵타격을 포함한 전면전 계획을 마련한다. 24일 미사일을 실은 소련 화물선단이 해상 봉쇄 라인에 접근하면서 긴장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러나 정착 위기의 순간은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쿠바 상공을 정찰하던 미국의 U-2기가 쿠바의 지대공미사일에 맞아 추락하고 또 두 시간 후엔 정찰임무 중이던 미국의 U-2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하여 미그기가 비상출격하게 이른다. 이 두 사건은 해상 대치 상황에서 상대방의 선제공격으로 오인될 큰 사건이었고 핵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시점에 지도자의 철학과 판단이 빛났다. 핵전쟁은 피해야 한다는 케네디 대통령은 로버트 케네디를 주미 소련대사에게 보내어 쿠바 불침공과 소련을 겨누던 터키 내 미사일 철수를 전제로 쿠바 내 미사일 철수를 제안한다. 니키타 흐루쇼프도 미국 내 군사행동을 촉구하는 강경파의 압력을 받는 케네디의 입장을 감안해 협상안을 전격적으로 수용, 28일 세기적인 핵위기의 막을 내린다.
예측 불허의 북한과 협상에서 우리는 많은 경우 불리한 입장에 놓이기 쉽다. 우리가 겁이 많거나 약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치관, 국제사회의 위상, 심지어 우리가 축적한 재산 등이 우리의 행동 범위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마치 카드게임에서 우리는 패를 펴놓고 북한은 패를 가리고 하는 것과 같다. 엄밀하게 말하면 주변국들은 카드판 구경꾼에 불과하다.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흥을 돋우기도 하고 열기를 진정시키기도 하지만 결국 판단은 우리의 몫이다. 주변 국가들이 세계 평화와 동북아의 안정을 이야기하지만 우리에게는 국민의 안전이 우선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일차적 피해자는 남북한 주민이고 미ㆍ중ㆍ일 등은 간접적인 피해자이다.
한국은 이미 북한과의 체제 경쟁과 경제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이다. 북한과 자존심 경쟁이나 힘의 시위는 서로가 파멸하는 길이다. 자존심은 좀 상하고 손해를 보는 줄 알면서, 그래도 베푸는 것이 승자의 여유이다.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를 멈출 키는 북한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 북핵 위기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하지만 아직도 적극적인 대화와 협상의 여지는 있다. 케네디가 흐루쇼프를 움직였던 '쿠바 불침공과 소련을 겨누던 터키 내 미국의 미사일 철수' 같은 제안을 우리가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