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IT전문지 웨이보에 올라온 만화가 화제다. 익명의 네티즌이 그린 만화지만 현재 중국 IT업계의 속사정을 그대로 보여주며 조회수가 3일만에 430만건을 넘어섰다. 만화는 중국의 전통적인 괴물인 사흉(도철· 혼돈·궁기·도올)을 무섭게 생긴 늙은 거인이 깔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무기력하게 깔려 있는 사흉은 화웨이·샤오미·레노버·오포 등 중국 휴대폰 업체고 늙은 거인은 노키아를 의미한다. 재미있는 건 노키아 옆에 챙이 높은 모자를 쓴 사람(마이크로소프트)이 귓속말을 한다. "더 비싸게 팔아야지"
한 컷짜리 만화가 나타내는 상황은 이렇다. 지난해 9월 MS가 노키아 휴대폰 사업부를 인수하며 중국 휴대폰 업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업을 팔면서도 이동통신 관련 무수히 많은 특허를 보유한 노키아가 스칸디나비아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 트롤(Troll)이 돼 사흉(휴대폰업체)들을 지배할 것이고 MS는 윈도우폰 점유율 확대를 위해 노키아의 특허권 남용을 부추길 것이라는 예상이다. MS와 노키아의 기업결합심사 2단계 심사가 끝나는 2월19일을 앞두고 중국 IT업계들은 이례적으로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상황이다.
中 MS-노키아 결합따른 미래 고려
중국 휴대폰 업체들이 MS와 노키아의 합병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앞서도 말했듯 휴대폰 사업이 없는 노키아가 보유한 특허로 이익을 취하는 특허괴물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다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을 인수한 MS가 현재 점유율 3.7%에 불과한 윈도우폰의 점유율을 15%로 높이기 위해 안드로이드폰 시스템에 보유하고 있는 수만건의 특허 사용료를 대폭 올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가격경쟁력으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 휴대폰 업체 입장에서는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LG전자라는 대기업이 휴대폰에 독과점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지만 이동통신 관련 특허에 대해서는 걸음마 수준이다. 지금도 노키아에 판매가의 2%, MS에는 휴대폰은 1대당 5달러, 패드는 10달러의 특허료를 내고 있다.
한국과 중국 모두 전설 속의 북유럽 트롤의 위협이 현실이 된 셈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인데도 두 나라 경쟁당국의 대처 방법은 다르다. 중국은 MS와 노키아의 기업결합심사를 상무부에서 주관하지만 발개위·공신부 등 여러 부처의 의견을 취합해 의사를 결정한다. 쉽게 말해 경쟁법적인 상황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 산업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고려한다. 하지만 우리 공정거래위원회는 귀를 막고 산업 관련 의견을 듣지 않는 듯 보인다.
기업결합심사 일정에도 중국이 좀 더 신중하다. 1단계 30일 2단계 90일에 공청회 등을 거친 후 60일을 재연장할 수 있다. 한국은 1차(30일), 2차(90)일로 2단계로 나눠져 있다. 그나마 자료 준비기일을 심사기일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이 있어 시간을 끌긴 하지만 공청회 등 외부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는 없다. 위원회 조직으로 의견을 취합하긴 하지만 경쟁법적인 상황만 고려할 뿐이다. 여기다 대기업에 대한 지독한 편견도 산업적인 측면을 배제한다.
이미 시장점유율이 독과점 수준이 휴대폰에 현재 3.7%의 점유율을 가진 MS가 들어온다고 무슨 일이 발생하겠냐는 도식적인 발상은 불과 몇 년 뒤 MS의 점유율이 확대되고 특허남용이 발생할 때 어떤 식으로 다시 대처해나갈지 의문이다.
물론 최근 나타나고 있는 특허를 보유해 소송을 하는 업체들이 산업전반에 무조건 해를 끼친다고만 할 수는 없다.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의 특허를 구매해 대기업의 특허침해를 대신 방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MS와 노키아의 합병으로 탄생하는 특허괴물은 공정한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거대 다국적 기업이란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 공정경쟁 가능한지 따져봐야
다국적 기업의 기업결합 심사는 통상 각국의 경쟁당국이 모여 논의를 하고 합의점을 찾는다고 한다. 과거 2000년대 초반 GE의 기업결합 심사에서 미국은 승인한 반면 EU가 불허하며 파장을 일으켰던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MS와 노키아의 기업결합은 지난해 11월 이미 미국과 EU에서는 통과를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해 당사국인 한국과 중국이다. 우리 공정위가 충분히 심사숙고해 결정을 내리겠지만 중국의 대처 방법도 눈여겨보기 바란다. 미국은 MS를, EU는 노키아의 편을 든다면 우리는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산업생태계가 어떤 것인지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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