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군대에 가 있는 사이 여자가 헤어짐을 고하면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고 한다. 여자의 마음과 거꾸로 신은 고무신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다른 신발도 많은 데 왜 하필 고무신일까.
고무신은 거꾸로 신고 걷기 쉽다.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걸으면 발자국이 남자를 향한 것처럼 찍힌다. 그만큼 도망갈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어, 상대를 안심시켜놓고 더 멀리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그럴듯하다. 
고무신이 우리나라에 첫 선을 보인 건 1922년 8월5일, 93년 전 오늘이다. 그날 이후 고무신은 한 때 전 국민의 80% 이상이 애용했을 정도로 국민 신발이었다. 명실상부한 신발의 대명사였던 셈이다.
고무신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업체는 대륙고무주식회사다. 제품 출시 첫 날 이 회사는 ‘대륙고무가 고무신을 출매함에 있어 이왕(李王)께서 이용하심에 황감함을 비롯 여관(女官) 각 위의 애용을 수하야’라는 신문광고를 실었다. 여기서 이왕은 순종으로, 한국인으론 최초로 고무신을 신었다고 기록돼 있다. 순종은 발이 편하다며 고무신을 주위 사람에게도 적극 권했다고 한다.
  
대륙고무는 당시 미국 대리공사였던 이하영 씨가 설립한 회사다. 그는 갓 쓰고 도포를 두른 차림으로 서양 춤을 잘 춰 워싱턴 사교계에서 인기를 끌었다. 대륙고무가 내놨던 ‘대장군표’ 고무신은 당시의 갖신이나 당혜ㆍ짚신보다 방수도 잘됐고 실용적이었다. 여기에 ‘무엄하게도’ 임금을 광고에 재빠르게 활용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던 고무신의 가장 큰 매력은 저렴한 가격이었다. 당시 양화점 구두 한 켤레 값은 12원, 노동자 평균 월급의 60%에 달하는 액수였다. 그에 반해 고무신의 가격은 구두의 30분의 1도 안 되는 40전이었다. 합리적인 가격에다 구두 못지않은 내구성과 실용성을 가진 고무신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최근 경기침체가 길어지며 소비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비싼 프리미엄 제품보다 합리적인 가격(cheap)과 세련된 디자인(chic)을 겸비한 ‘칩시크(Cheap-Chic)’ 제품들이 각광받고 있다. 돈 없는 서민들의 발이 돼 주었던 고무신은 20세기초를 풍미한 ‘칩시크’ 였다.  , 김현주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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