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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브라운(56) 영국 재무장관이 지난 10년간 영국을 이끌어 온 토니 블레어(54) 총리에 이어 오는 27일부터 영국을 이끌어 갈 새 총리에 취임한다. 영국 집권당인 노동당은 24일(현지시간) 맨체스터에서 노동당 특별전당대회를 열고 단독 출마한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을 새 당수로 추대했다. 영국에서는 집권당 당수가 자동적으로 총리를 맡기 때문에 브라운 장관은 27일 블레어 총리의 퇴임 후 차기 총리직을 승계한다. 브라운 총리 내정자는 화려한 언변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블레어 총리와는 달리 빈틈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실무형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블레어 총리 시절에 10년 동안 재무장관으로 재직하며 연평균 2.7%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영국 국민들로부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브라운 장관은 전당대회에서 당수직을 수락하며 교육 시스템 개혁과 빈곤 퇴치, 보건서비스 향상 등 필요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인도와 경쟁하기 위해 전문 기술인력을 양성할 교육투자 확대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떠오르는 영국의 목표를 확인했다"며, "새로운 목표를 충족시키려면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라크 주둔 영국군을 당분간 철군하지 않을 방침임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날 전당대회장 밖에서는 반전시위대 7,000여명이 모여 영국군의 조기 철군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새 총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노동당의 지지율은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으로 보수당을 앞질렀다. 24일 옵서버 신문에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노동당 지지율은 39%로 보수당보다 3% 포인트나 앞서 이른바 '브라운 효과'를 톡톡히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브라운 장관은 차기 총리이자 노동당 당수로서 3회 연속 총선에서 승리한 블레어 총리의 뒤를 이어 오는 2009년이나 2010년 치러질 총선에서 노동당에 네 번째 승리를 안겨줄 책임을 지고 있다. 브라운 장관은 블레어 총리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블레어 총리가 소유한 잉글랜드 중산층과의 본능적 연대감이 결여돼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블레어가 지난 달 10일 사임을 발표한 후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블레어파-브라운파로 갈려 내분을 겪었던 노동당은 브라운 휘하에 결집하고 있다. 노동당의 리암 번 내무 차관은 브라운 장관이 차기 총리로 확정된 후 "노동당내 분위기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활기를 띠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편 6명의 후보가 출마한 노동당내 부당수 선거에서는 해리엇 하먼(56) 법무 차관이 노동당원, 노동조합원, 의원들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50.43%의 지지를 얻어 신임 부당수로 선출됐다. 하먼은 존 프레스콧 부총리로부터 노동당 부당수직을 물려받는다. 그러나 브라운 차기 총리가 노동당 부당수인 하먼을 부총리로 지명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 브라운은 누구인가 10년간 재무장관 재임'최장수'…英경제부활 주도 차기 영국 총리로 확정된 고든 브라운 재무부장관은 지독한 '일벌레'로 통한다. 지난 97년 노동당 정부 출범과 함께 재무장관이 된 이후 꼼꼼한 일처리와 업무에 대한 열정으로 역대 최장수 재임 기록을 세우고 있다. 고교때 대학 입학을 앞두고 럭비시합 중 왼쪽 눈을 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책에 파묻혀 살았다. 지금도 노동당 정부 각료들의 집무실 중 제일 먼저 불이 켜지고 가장 늦게 불이 꺼지는 곳이 그의 방이다. 지난 10년간 영국 경제 부활의 주역을 맡으며,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과거 정치논리에 휩싸이던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을 정치적으로 독립시켰다. 런던 템스강 하류에 있는 초라한 부두를 세계금융 1번지로 바꾼 '카나리 워프(Canary Wharf) 신화'도 그의 작품이다. 현재 HSBC, 시티그룹, 크레디스위스, 바클레이스 등 이곳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종사자는 9만명을 넘고 2025년에는 20만명에 이르러 세계 최대 금융산업단지로 부상할 전망이다. 만약 브라운 장관이 없었다면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 3기 연임과 10년 호황이라는 영광도 없었다는 찬사도 나온다. 1951년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가 멀리 보이는 작은 도시 커콜디에서 장로교회 목사 존 브라운의 세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담 스미스의 고향'이기도 한 커콜디의 공립고교를 다닌후 16세의 나이에 에든버러대학에 들어갔다. 에딘버러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후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브라운은 '68 학생운동'이 휩쓸던 당시 대학 캠퍼스에서 좌파 운동권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72년 학생대표가 되기도 했던 브라운은 75년 좌파 잡지 '더 레드 페이퍼 온 스코틀랜드'를 창간해 편집장을 지냈다. 반면 지난 83년 나란히 초선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한 블레어 총리는 옥스퍼드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학생운동보다는 록밴드를 이끌어 브라운과 대비된다. 이런 과거로 볼 때 브라운은 블레어보다 더 좌파 성향이 강하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젊은 의원 브라운과 블레어가 협력과 경쟁의 리더쉽을 발휘하면서 노동당은 '철의 여인'으로 불리던 보수당 출신의 대처 전총리의 벽을 넘어 마침내 97년 새 집권의 시대를 열었다. 브라운은 2000년 49세 때 늦게 결혼해 2003년 첫 아들 존을, 지난해 7월 둘째 아들 제임스 프레이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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