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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제자 중에 증자(曾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는데 아이가 울면서 따라오려고 했다. 아내는 "엄마가 돌아와서 돼지를 잡아줄 테니 집에 있어라"고 아이를 달랬다. 아이는 엄마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집에 남았다. 아내가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보니 남편인 증자가 돼지를 잡으려고 칼을 갈고 있었다. 깜짝 놀란 아내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한 것인데 정말 돼지를 잡으면 어떻게 합니까"라며 증자를 말렸다. 증자는 웃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오. 어린아이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부모에게서 배우게 된다오. 지금 어린아이를 속이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속임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겠소. 어머니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이 어머니를 믿지 않게 될 것이오." 말을 마친 증자는 돼지를 잡아 아이에게 먹였다. 중국 고전인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증자의 돼지 이야기'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했다. 지난 2007년 대선 때 내걸었던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다. 이 대통령의 '약속 불이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기간은 물론 당선 이후 2년이 될 때까지도 세종시에 행정도시를 건설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약속을 저버리고 수정안을 들고 나왔고 결국 국회는 세종시 원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이 대통령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충청권에 조성하기로 한 공약도 '다시 검토하겠다'며 말을 뒤집었다. 대선 공약집에 있던 내용이 아니라고 얼버무렸지만 대선 공약집 34쪽에 명시된 것이 확인되면서 망신을 당했다. 대통령이 식언(食言)을 할 때마다 온 나라는 홍역을 겪는다. 이해관계에 따라 지역 간 갈등과 반목도 심해진다. 대통령의 말은 곧 '국격(國格)'이다. 대통령이 식언을 하면서 어떻게 국민들에게 참말, 진실된 말을 하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거창한 공약을 내세워놓고 나중에는 '경제성이 없다'며 말을 바꾼다면 우리사회는 허언(虛言)ㆍ실언(失言)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고 만다. 증자의 돼지 이야기가 무서운 가르침으로 우리사회와 시대를 질책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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