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월 대우증권은 국내 H골프장 건립에 350억원을 투자했다. 건설경기가 어렵지만 늘어나는 골프인구를 감안했을 때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우증권의 판단은 적중했다. 투자 결정 3개월 만에 목표수익을 달성했고 바로 조기 상환을 결정했다. 연 수익률로 36.6%의 수익을 올렸다. #2. 대신증권은 지난해 7월 중국 주식시장이 활황세를 나타내자 중국주식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형태의 ‘드래곤펀드’ 투자를 결정했다. 투입규모는 자기자본 50억원. 이후 중국증시는 폭등했고 대신증권은 곧바로 물량을 정리하며 차익을 실현했다. 4거래일 동안 수익률은 56%, 금액은 28억원이었다. 국내 증권사들이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 동안 주식시장에서 중개자 역할에 머물러왔던 증권사들이 거래의 객체에서 벗어나 거래의 주체로서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주식매입은 기본이다. 선박ㆍ항공기 같은 실물에도 투자하고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방식을 통해 국내외 부동산에도 기웃거린다. 괜찮다 싶으면 아예 기업도 사들인다. 국내 증권사들이 단기간에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부상한 맥쿼리의 성장전략을 염두에 두고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반드시 따르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추면서 장기적인 투자플랜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IB의 핵심은 PI=PI(Principal Investment)는 IB의 핵심으로 자기자본을 통한 직접투자를 말한다. IB업무 중 가장 위험이 크고 또 그만큼 수익이 가장 높아 선진국형 IB의 전형으로 불린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PI는 자기자본을 이용해 사모펀드(PEF) 등에 직접 투자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으로 위험을 인수하는 사모투자방식으로 비교적 최근에 발전했다”고 정의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기존의 IB는 기업공개(IPO)를 대행하거나 기업간 인수합병(M&A)을 주간, 또는 채권발행을 주선해 수수료를 얻어 수익을 발생시킨다. 반면 PI에서는 증권사가 거래를 중개하는 객체에 머물지 않고 주체로 활동한다. 즉 IPO 예정기업에 직접 지분을 투자하거나 M&A 매물로 나온 기업을 직접 인수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다. PI는 기존의 IB업무에서 한단계 더 진화된 IB라 할 수 있다. ◇활발하긴 하지만…=최근 국내 증권업계에도 PI투자가 활기를 띠고 있다. 국내 PI 부문은 몇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우선 PI가 일부 대형증권사 위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PI가 전형적인 규모의 경제인 탓이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한국투자증권이 1조5,000원을 투입해 가장 큰 규모의 PI 투자에 나섰고 대우증권(6,600억원), 굿모닝신한증권(4,900억원), 미래에셋증권(4,000억원) 등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대우증권이 2월 국내 골프장 건립에 350억원을 투자했고 5월에는 필리핀 수빅만 리조트개발사업에 2,200만달러, 시흥시 죽율동 아파트 개발사업에 200억원을 투자했다. 우리투자증권은 부동산 개발에 40억원, 바이오업체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에 90억원, 대한통운 교환사채에 500억원을 각각 투자했다. 또 현대증권은 총 525억원을 들여 국내외 M&A, IPO, PF 등에 자기자본을 투입했다. 비록 올해 들어 증시가 부침을 겪으면서 다른 증권사들의 PI투자가 잠깐 휴지기에 들어갔지만 언제라도 기회만 온다면 달려들 태세다. 이머징마켓 및 부동산시장 진출은 국내 PI 부문의 또 다른 특징이다. 국내의 경우 나눠 먹을 파이가 한정적이고 건설업계가 자금조달에 문제를 겪고 있어 국내 증권사들이 이머징마켓과 부동산시장을 틈새시장으로 보고 적극 공략하고 있다. 특히 굿모닝신한증권이 해외시장 진출에 적극적이다. 굿모닝신한증권은 2007년 라오스 코라오에너지의 자트로파 투자, 괌 투몬베이 PF사업에 이어 올해에는 말레이시아 레드핫비상장기업, 발리 풀빌라 PF 사업 등에 투자했다. 대우증권은 인도네시아 유연탄광, 중국 칭다오 도심주상복합 개발 프로젝트, 말레이시아 벌목사업, 인도네시아 증권사 지분 인수 등에 참여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중국 상하이 부동산투자, 괌 콘도미니엄 등에 자기자본을 투자했다. ◇갈 길이 멀다=이처럼 PI투자가 활기를 띠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비록 최근에 와서 PI투자 규모가 늘고 있지만 PI가 전체 수익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미미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국내 증권사의 PI투자 누계는 1조4,400억원으로 총 자기자본대비 5% 수준이다. 반면 PI계의 롤모델인 골드만삭스가 지난해 자기거래 및 투자에서 벌어들인 수익만 해도 전체 수익의 3분의2에 달한다. 장범식 한국증권학회장은 “세계 금융시장에서는 IB 업무영역이 전통적인 자문이나 브로커리지에서 PIㆍ자산관리 등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뉴욕증권거래소 회원사의 평균 수익구조에서 트레이딩과 PI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기준으로 40%를 웃돈다”고 말했다. 노희진 한국증권연구원 박사 역시 “IB나 PI 등이 증권사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위탁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50%에 달한다”며 “미국 등 금융선진국의 경우 위탁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국내 PI가 부동산 관련 업무에 지나치게 쏠려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PI가 기본적으로 기업금융에 본류를 두고 있는데다 비록 현재는 건설시장의 자금조달 등의 문제로 PF에서 단기 수익을 얻고 있지만 이 같은 패턴이 장기간 지속될지는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 박사는 “IB의 본질은 기업금융으로 PI 역시 기업과 관련된 투자활동 성격을 나타내야 한다”며 “국내 증권사들의 경우 부동산 같은 PF에 많이 치우쳐 있는데 과연 이러한 패턴이 바람직한지는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과 돈이 필요한 싸움=이 같은 지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뻔한 지적 같지만 국내 증권업계에 PI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불과 2~3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글로벌 리딩 IB 수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하우를 축적할 시간이 필요하다. 김 연구위원은 “IB나 PI는 기본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싸움”이라고 강조하며 “내년에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고 난 후 20년은 지나야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자본확충은 풀어야 할 제1의 숙제다. 흔히 IB를 두고 자본력의 싸움이라고 말하는데 그 중에서도 PI는 기본적으로 자기자본 투하에 따른 이익이 창출되는 구조로 규모의 경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종덕 굿모닝신한증권 PI팀 부장은 “PI에서 자본은 게임에 참여하기 위한 필요조건과도 같은 것”이라며 “특히 자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빅딜에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하지 못하고 이는 결국 경험을 쌓지 못한다는 점에서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철저한 리스크관리 시스템은 도약단계에 접어든 국내PI가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PI가 줄 수 있는 하이리턴에만 치중한 나머지 하이리스크를 간과할 경우 득보다 실이 큰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부실 여파로 베어스턴스가 파산한 사례는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허대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PI 투자금액이 가장 많은 골드만삭스가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이 투자은행 가운데 가장 적은 것은 PI 전문회사로 성장했기 때문”이라며 “이제 막 PI 투자에 나서고 있는 국내 증권사들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 글로벌 IB, PI 사례
메릴린치, 사모펀드와 컨소시엄, 美 HCA 바이아웃 형식 인수
中공상은행 IPO과정서 투자, 골드만삭스, 9조원 평가익 챙겨 지난 2006년 메릴린치는 사모펀드인 KKR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미국 최대 병원운영업체인 HCA를 330억달러에 사들였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바이아웃(Buy-outㆍ차입을 통해 기업을 인수한 뒤 되팔아 차익을 얻는 M&A 기법)이었다. 하지만 시장이 주목한 건 규모가 아닌 메릴린치의 전략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 투자은행들은 기업공개나 인수합병(M&A)을 중개해 일정 수수료를 받는 전통적 전략을 구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메릴린치가 1980년대에 유행했던 기업사냥꾼 전략을 취했던 것. 월가에서는 이를 PI 활성화를 예고한 사건으로 인식한다. PI는 최근 들어 글로벌 리딩 IB들에 대박을 안겨주는 '신의 전략'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골드만삭스가 있다. 골드만삭스는 IB 중에서도 군계일학과 같은 모습이다. 2006년 중국공상은행 기업공개(IPO) 과정에 24조원을 투자해 9조원의 평가이익을 거뒀으며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과실을 따 먹은 뒤 일찌감치 손을 털고 나와 부실의 영향권에서는 벗어나 있다. 골드만삭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재미를 보자 뒤늦게 뛰어든 경쟁 IB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베어스턴스는 파산했다. 글로벌 IB시장에서 최근 들어 급부상한 곳이 호주의 맥쿼리다. 사회간접자본(SOC)이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해 대성공을 거둔 맥쿼리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둔 국내 증권사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맥쿼리는 공항과 도로ㆍ전력ㆍ통신시설 등 다양한 곳에 투자한다. 한 예로 맥쿼리에어포트그룹은 시드니공항, 이탈리아 로마공항 등의 지분을 인수해 수익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 글로벌 IB가 추구하는 PI의 특징은 단독투자가 아닌 펀드형식을 통한 고객과의 공동투자라는 점이다. 이는 차입을 통한 레버리지 극대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PI 도약단계에 놓여 있는 국내 증권사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한종덕 굿모닝신한증권 PI팀 부장은 "국내 증권사도 특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사모펀드를 결성해 투자하고 있지만 규모 면에서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라며 "글로벌 IB들과 빅딜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분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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