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해소와 임금피크제도 등의 현안은 경제활동 인구를 늘려 사회를 안정화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일자리와 관련해 전문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문구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 입장에서는 안타깝기 짝이 없다.
과학기술은 미래의 먹을거리를 창출하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전문가가 기술을 개발해줘야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과거 이승만 대통령은 재정이 열악했을 때도 국비 유학생을 선발해 해외로 보냈다. 그렇게 키워진 1세대 원자력 전문가들의 열정과 헌신이 발판이 돼 한국은 원자력 강국이 됐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상업용 원전을,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를 수출한 것도 전문가가 있어서다.
그런데 한국에서 전문가가 버틸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 이는 우리 국민이 환호성을 듣게 될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여러 분야에는 점점 더 외국 기술이 우리 전문 영역에 침투하고 있다. 기술력은 국력이다. '기술 종속'은 국력과 외교력 약화로 이어진다.
한빛원전 고장확인과 천안함 폭침 사건만 봐도 우리 전문가의 대우를 알 수 있다. 한국은 국내 전문가들의 판단을 믿어주지 않았다. 애써 키워온 전문가를 우리가 무시해버린 것이다. 존중과 인정을 받지 못하는 전문가가 신명을 내서 진력을 다할 수 없다. 전문가를 무시하는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 성장의 동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원자력 안전을 외쳐보지 않은 국민이 없다. 안전은 기술자가 책임지고 지켜 내야 한다. 이제 원자력 안전은 전문가의 기술영역이 아니라 정치와 여론의 영역이 돼 버렸다. 그리해 우수한 능력과 경험·지혜를 지닌 전문가는 연구현장과 산업현장을 떠나고 있다. 뛰어난 현장 연구원은 대학의 교수로 가버리고 산업계의 전문가는 외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서 습득한 전문기술이 단절되고 있다.
전문가가 떠나면 연구개발(R&D)은 물론이고 다음 미래를 책임질 전문가도 키울 수 없다. 해외 원전으로 전문가들이 다 빠져나가 버리면 국내 원전의 안전도 지킬 수 없다. 원자력전문가는 10~20년간 현장근무와 연구를 수행하면서 양성된다. 원전 건설과 안전운영, 원전수출, 친환경 미래원전개발, 폐로사업, 핵 비확산 등을 이끌어가려면 경험·지식·지혜를 갖춘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경쟁국들은 전문가들을 앞세워 달려가는데 우리는 선진국을 조금 따라잡았다고 전문가를 내치고 있는 것이다
단시간에 인력을 키워 전문가를 대체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전문가의 자긍심을 살려주자. 연구원에도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연구원의 정년도 환원하고 성실했던 산업계 전문가의 재취업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연구원과 현장 전문가로서의 신분이 보장되고 미래가 보인다면 그들은 떠나지 않고 신명 나게 할 일을 한다. 에너지는 안보다. 청년실업 해소에 역점을 둔다며 전문가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가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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