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국가 미국은 해적들에게 쩔쩔맸다. 미국 선박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해마다 공물까지 바쳤다. 상대방은 지중해를 무대로 악명을 떨치던 바바리(Barbary) 해적. 오스만튀르크로부터도 반독립국으로 인정 받던 바바리 해적들이 미국을 본격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한 것은 1783년부터. 독립전쟁 동안 미국 선단을 보호해주던 프랑스 해군의 방패막이 없어지면서 해적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운영비가 없어 해군까지 폐지했던 연방정부는 바바리 해적들에게 공물을 바친 후에야 안전항해를 보장 받았다. 해적들의 요구는 점점 커졌다. 15년간 매년 100만달러씩 공물을 바치라는 요구까지 들이댔다. 연방정부 예산의 20%가 넘는 금액을 부정기적으로 내주던 미국은 참다 못해 1974년 해군을 부활시키고 전쟁준비에 들어갔다. 해적들이 새로운 지도자를 뽑았다며 축하금 명목으로 22만5,000달러의 공물을 요구해왔을 때 미국은 신형함 7척으로 구성된 원정함대를 꾸려 1802년 지중해로 내보냈으나 1803년 10월 위기를 맞았다. 1,240톤짜리 범선 필라델피아호가 트리폴리 항구에서 좌초해 승무원들이 포로로 잡힌 것. 위기상황에서 미 해군은 특공대를 투입해 1804년 2월16일 새벽, 적의 손에 넘어간 필라델피아호를 폭파시켰다. 이때부터 전황이 미국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해적들은 결국 1805년 무릎을 꿇었다. 트리폴리 해전으로 지중해의 골칫거리였던 바바리 해적을 무찌르자 유럽 국가들은 미국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독립 후 최초의 대외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공들여 해군을 키웠다. 덕분에 조선산업이 건국 초기 미국을 대표하는 산업으로 급성장했다. 부당한 압제에 맞서려는 의지와 풍부한 삼림자원 간 결합이 미국의 초기 제조업을 키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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