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쉬는 저항의 술책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흑33, 35로 패를 내는 수단이었다. 늘어진 패이므로 백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듯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다. 흑은 잡혀 보았자 돌이 몇 개 안되지만 백은 돌의 수효가 제법 많아서 만약 백이 이 패를 진다면 치명상이다. 한국기원의 프로기사들은 예전에 서봉수가 3수 늘어진 패를 간과하다가 린하이펑에게 패한 사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이세돌 역시 그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기사이다. 그는 패의 요술에서 탈출하기 위해 가장 안전한 방책을 강구했다. 백40으로 집어넣어 양패를 내는 이 수단. 이것이라면 좌상귀의 흑은 확실히 죽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 있다. 흑에게는 무진장의 팻감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 이 변수가 종반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게 된다. 흑41로 쳐들어간 수가 멋지다. 백은 42로 차단하지 않을 수 없으니 흑으로서는 이 부근에서 결정적인 팻감을 또 여러 개 만들어 내게 되었다. "장쉬가 시간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노련합니다."(김성룡) 이세돌은 제한시간이 바닥났지만 장쉬는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초읽기에 몰린 상대를 괴롭히기 위해 장쉬는 가장 난해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였다. 게다가 장쉬는 몇 가지 노림수를 품고 있었으니…. 흑47의 급소 일격이 그 서막이었다. 계속해서 흑49로 찌른 수가 교묘했다. 백은 흑 2점을 차단할 수가 없다. 김성룡은 생중계 사이트에 참고도의 백1 이하 흑8을 올리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중원의 흑이 두터워지면 백도 장담할 수 없는 형세입니다." 그러나 장쉬는 그 코스로 가지 않고 훨씬 더 짜릿짜릿한 맥을 짚어갔다. 흑53의 코붙임이 그것이었다. (39,63…33. 60,68…36. 64…40. 6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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