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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에 들어온 외국 미술품 신고액이 1억2,370만달러(약1,360억원)어치였다고 관세청이 지난달 28일 발표했다. 흥미로운 것은 관세청이 미술품 신고액과 함께 명시하는 미술품 중량인데, 지난해는 54만8,400㎏의 미술품이 수입됐다. 미술품을 마치 채소나 고기처럼 무게로 달아 가격을 매기는 것만 같아 웃음이 난다. 이를 두고 관세청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미술품의 수준과 가치를 제대로 매기고자 한다면 엄청난 전문인력의 까다로운 평가과정이 소요돼 통관업무가 마비될테니 말이다.
헛웃음을 짓게 만드는 미술품 관세 업무는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다. 가장 유명한 역사적 사건은 1926년 프랑스를 떠나 뉴욕항에 도착한 세계적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공간의 새'(사진)라는 작품이었다. 미술품은 무관세지만, 미국 세관은 이것을 작품이 아닌 부엌용 가정용품이라 판정해 세금을 매겼다. 추상조각이라 겉보기에는 노란빛의 길죽한 청동작품이 그쯤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물론 국내 세관에서도 이런 시트콤같은 사건이 있었다. 2004년 삼성문화재단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영상작가 김수자의 대표작 '바늘여인'을 들여왔다. 8개 도시에서 벌인 퍼포먼스를 촬영해 10m 정육면체 공간에서 상영하는 이 설치미술품이 담긴 DVD를 두고 관세청은 일반레코드로 분류해 세금을 매겼다. 다행히 서울행정법원은 "레코드라기보다 오히려 조각에 가깝다"고 봤다. 2007년에는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김윤수 관장이 마르셀 뒤샹의 작품 '여행용 가방'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관세청에 작품 반입을 신고하지 않아 관세법 위반으로 고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눈여겨 봐야할 것은 이들 '귀여운 해프닝'의 이면이다. 세관에 신고하지 않고 밀반입하는 해외미술품의 경우 그 규모를 가늠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환치기, 비자금 국외 은닉 등으로 악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번 '미술품 수입동향'을 통해 드러난 미술품 수입의 2년 연속 감소세를 관세청과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은 불황으로 인한 국내 미술시장 침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술경기가 좋을 때 작품 수입이 급증하기는 하나, 시장 침체기였던 2012년 상반기에는 3배나 수입량이 급증했었고 그 해 미술품 같은 무관세 품목을 이용한 환치기 범죄 적발금액이 1조6,900억원 규모라는 국정감사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경기 둔화로 고가의 해외미술품 거래가 줄어든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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