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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밤 택시를 탔다. 예순은 돼 보이는 기사분이 대뜸 "정말 일하기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관심을 보였더니 기다렸다는 듯 하소연이 시작됐다.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습니다. 어제는 말이죠, 밤 12시에 동대문에서 종로를 거쳐 마포까지 가는 동안 단 한 명도 못 태웠습니다. 회식 많은 목요일인 데다 자정이고, 특히 평소 붐비는 곳들인데 텅텅 비어서 정말 놀랐습니다. 목요일 밤 이렇게 손님을 못 태운 적은 아마 처음이었을 겁니다."
기사분의 푸념은 계속됐다. "보통 오후 1시에 나와서 12시간 넘게 일합니다. 식대와 기름값을 제외하고 하루 15만원 벌어야 한 달에 300만원을 쥡니다. 개인택시라 20일쯤 일하거든요. 근데 어제는 죽어라 다녔는데 기름값만 날리고…, 마포 지나 여의도에서 간신히 한 명 태운 뒤 1시 반쯤 집에 들어갔어요. 손에 쥔 건 고작 7만1,000원이 다더군요."
어제 일을 떠올린 그는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울상을 지었다. 내릴 때쯤 "세월호 여파가 이렇게 클 줄 몰랐습니다. 유가족들의 고통에 비할 수는 없지만 안 쓰는 분위기가 오래가면 택시기사들 곡소리 날 겁니다"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체감 경기의 '바로미터'인 택시기사의 절절한 호소처럼 대한민국의 경제 활동이 일시정지한 듯하다. 어린이날 모습이 그랬다. 가족과 함께 백화점을 찾았다가 두 눈을 의심했다. 예상과 달리 주차장 자리가 너무 많이 비어 있던 것. 매장 내부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린이날 그렇게 한산한 광경은 처음 봤다. 발 디딜 틈 없었던 예년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올스톱 상태는 대한민국 전체로 퍼져나가는 중이다. 수년에 걸쳐 첫 맥주 제품을 출시한 롯데주류가 론칭 행사를 포기하는 등 대부분의 기업 마케팅이 자취를 감췄다. 함평 나비축제, 여수 거북선축제 등 수백개에 달하는 지방 축제도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또 수학여행, 가족 여행 등 수천 건의 관광행사가 물 건너가면서 여행·숙박·운송업이 직격탄을 맞았고 회식·모임 등도 줄줄이 취소돼 소상공인의 매출은 뚝뚝 떨어지는 중이다. 선거 특수마저 실종돼 인쇄·플래카드 업체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힘차게 노를 저어도 모자랄 5월 대목에 대한민국 경제가 이렇게 멈춰 섰다.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국상(國喪)'을 치르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선뜻 놀고 먹고 웃고 떠드는 모습을 드러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살아 있음이 죄스러운 마음인데 오죽할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식음을 전폐하고 슬픔 속에 갇혀 있는 일만이 망자에 대한 예의일까. 잊지는 말되 고통을 떨쳐내고 분연히 다시 일어서서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도 먼저 떠난 가족들을 위로하는 일이 아닐는지….
2001년 9·11 테러 당시 미국도 공포와 슬픔에 잠겨 내수가 곤두박질쳤다. 그때 조지 부시 대통령은 국민에게 "일상으로의 복귀"를 선언하며 정상적인 소비 활동을 독려했고 미국은 경제 침체를 최소화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침몰이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럽지만 대한민국 경제까지 침몰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고 발생 한 달이 다 돼간다. 이제라도 일상으로 돌아가 정상적인 소비와 행사를 하자. 미뤘던 월드컵 마케팅도 차분하게 재개하자. 다행히 방송들도 예능이나 음악 프로그램을 다시 틀기 시작했고 정부도 수학여행을 재개키로 하는 등 분위기 반전에 나서는 모습이다.
정의롭지 못한 선원들 때문에 하버드대 교수인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다시 한번 꺼내 읽었다.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지만 샌델은 행복·자유·미덕의 적절한 분배를 직시했다. 특히나 도덕적 미덕과 공동선 추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상적 소비를 통해 택시기사와 주위 자영업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행동이 아니냐고 물으면 샌델은 어떻게 답할까. 적어도 고개를 끄덕거리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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