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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초 미국 석유산업의 80%를 독점한 스탠다드 오일의 창업자 존 록펠러의 후손들이 선조들의 더러운 기름 얼룩을 지우기 위해 나섰다가 실패했다. 미국의 명문가인 록펠러 가문이 지난달 28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엑슨모빌 주주총회에 참석해 엑슨모빌의 지배구조 및 환경대책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록펠러 일가가 상정한 안건들은 전체 주주의 30~40%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그쳐 부결됐다. 관심의 초점은 수십년간 은인자중하던 록펠러 가문이 무슨 사연으로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는지 하는 점이다. 록펠러 일가는 정계와 재계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구성원 각자의 성향이 워낙 이질적이어서 좀처럼 뭉치는 법이 없었고, 그 동안 대중 앞에 나서기도 꺼렸다. 록펠러 가문은 엑슨모빌 주총 이전까지 공개적으로 엑손모빌과 논쟁을 벌인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데이빗 록펠러(92) 체이스맨해튼 은행 전 회장은 자신의 딸이자 캠브리지대 출신 경제학자인 니바 굿윈 록펠러(63)에게 “주주 행동주의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가르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은 주주 행동에 나섰다. 지난 32년간 록펠러 일가의 족보를 연구해온 피터 존슨은 “가문 전체가 이처럼 합의를 보는 건 좀처럼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니바를 중심으로 뭉친 록펠러 일가는 엑슨모빌의 변화를 촉구하는 안건을 내놓았다. 대체에너지 개발 및 기후변화 대책을 마련하고, 회장과 최고경영자(CEO)의 업무 분리를 골자로 하는 독립 회장제를 도입하라는 것. 그래야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도 주주 이익에 충실한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엑슨모빌은 20세기초 스탠다드 오일이 반트러스트법에 의해 수십개 사로 해체된후 뉴욕과 뉴저지의 자회사들이 합병해 만들어진 세계 최대 석유회사다. 록펠러 가문이 환경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석유를 기반으로 한 부(富)’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1960~70년대 태어난 록펠러 후손들은 환경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선조들이 해온 석유사업을 못마땅해 하는 경향이 컸다. 전기 작가 피터 콜리어는 “젊은 록펠러 일원들에게 엑손모빌은 악이며 원죄다”라고 이해했다. 록펠러 가문이 엑슨모빌에 도전함으로써 록펠러 가문의 이름에서 기름자국을 지우려 했다는 것이다. 록펠러 일가는 지난 100여년 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가문으로서의 전통을 확립해왔다. 스탠다드 오일의 창업자 존 D 록펠러 경(1839-1937)은 20세기초 탐욕스런 독점자본가의 대명사로 비난을 샀다. 이에 록펠러경과 그의 아들 존 록펠러 주니어는 그런 이미지를 바꾸려고 광범위한 자선활동을 했지만, 스탠더드 오일의 해체를 겨누는 연방정부의 칼날을 막지 못했다. 그후 록펠러 가문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보였다. 인터넷 업체를 운영하는 마이클 록펠러는 “버릇나쁜 부잣집 아이들이라는 비아냥 앞에선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가문의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는 피터 오닐은 “록펠러 일가는 많은 기업에서 이사로 활동하지만 오지랖 넓은 참견꾼으로 이름난 적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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