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환 여론독자부 부장
“일본인지, 한국인지 헷갈렸어요. 이국적인 느낌이 안들어 별로였어요.” “외국이라 길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걱정 마세요. 곳곳에 한국인들이 있어 길 잃을 걱정이 없어요.” 올 여름 휴가차 일본 오사카나 도쿄 일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한국사람이 많다며 한결같이 하는 소리다.
중국 산동성 타이안(泰安) 타이산(泰山)에는 몇년전 한국등산길이 생겼다. 평야지대 동쪽 한가운데 우뚝 솟아 영험한 기운이 감돌고 ‘소원을 빌면 한번은 들어준다’‘한번 오르면 10년은 젊어진다’는 얘기들이 전해지면서 중국인들이라면 평생 한 번은 오는 곳이다. ‘태산이 높다하되~’ 조선 중기 양사언 시조로 교과서에 등장해,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하지만 계곡을 따라 지루하게 이어진 계단을 한국인 등반객들이 싫어하자 별도 코스를 만든 것이다. 인터넷에는 타이산과 칭다오 동쪽 바위산 라오산을 묶은 등반기, 칭다오와 공자 맹자의 고향인 취푸(曲阜)를 다녀왔다는 블로그가 부지기수다.
눈길을 국내로 돌려보자. 명동, 남대문, 롯데백화점 일대 거리에는 요우커(遊客)들 천지고 요즘 좀 드물어졌지만 일본인들 역시 적지 않다.
저가항공 노선이 개발된 후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한중일 휴가 트랜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는 최근 몇년새 주요지역을 연결해 개통된 고속철이 KTX보다 20~30% 저렴해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다. 동아시아 자유여행은 앞으로 더욱더 확산될 것이 분명하다. 마치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 일상화된 유럽처럼.
유럽이 EC로 하나가 된 데는 수세기 동안의 통일국가 로마의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로마이후 제국을 꿈꾸었던 나라들이 국명에 ‘로마’를 넣으려고 애쓴 것도 그런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동아시아 역사도 유럽과 형태는 달리하지만 서로 뒤엉켜 하나로 연결돼 있다.
중국의 마지막 왕국 청나라는 만주족이 통치했었는데 만주족은 고구려를 구성하는 말갈족의 후손, 발해유민이었다. 특히 만주족을 통합해 금나라를 일으킨 아구다(阿骨打)는 통일신라 폐망 후 흘러간 경주김씨의 후손이며 청나라 황실의 자손들이 지금도 김(金)씨 성을 쓰고 있다는 것이 최근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일본은 만세일계로 독자유래를 주장하지만 기원후 한반도에서 인구가 대량 유입돼 인구가 폭증했고 말, 철이 모두 반도에서 흘러갔으며 도래인이 지배계층을 형성했다는 건 역사적 사실이다. 특히 초기에 가야, 후기에 백제인들이 주류를 형성했다는 게 일본인 학자를 통해서 주장되고 있다. 백제는 고구려에서 분리돼 나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중일은 분리될 수 없는 인연을 이어왔다.
동아시아는 요사이 중국이 G2로 성장하면서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화약고로 떠올랐다. 센카쿠, 남사군도, 독도, 일본 북방섬 등의 영토문제, 진정한 반성에 회의를 불러일으키는 역사문제가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이 그러했듯이 동아시아도 도도하게 흐르는 평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동아시아 각국이, 또 시민들이 경제발전을 더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평화의 흐름을 주도해야 한다.
바야흐르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빛을 볼 시기가 왔다. 안 의사는 한중일 3국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해 아시아 여러국가로 확대하고 동북아 3국 공동은행, 동북아 3국 공동평화군 창설 등을 주장했다. 유럽연합 형태의 한중일 평화체제구상을 100년 앞섰다.
남북통일도 정치,안보적인 접근보다도 동아시아 평화와 공동번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안보, 국익차원에서만 풀려면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이 모두 현상유지를 원해 어렵다. 전후 독일 초대 수상 아데나워가 통일보다도 공산세력에 대항하자며 서유럽 통합을 첫손에 꼽도록 정책의 틀을 잡았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해졌다는 분석처럼 말이다. /hho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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