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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4일(현지시간) 상품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경우 "확실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힘에 따라 FRB의 출구전략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주최로 열린 금융 콘퍼런스 연설에서 상품가격 상승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지만 이는 일시적일 것이라는 기존 FRB의 입장을 견지한 채 "인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냉키 발언의 방점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일시적이라는 데 있었으나 종전보다는 출구 쪽으로 한 발짝 나아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장 2차 양적완화 정책을 수정할 것은 아니지만 "인플레이션에 대응할 것"이라는 발언은 다소 이례적인 것. 물론 전제조건이 있고 원론적 의미이기는 하지만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의 발언이 전해진 직후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엔화 가치는 달러당 84.09엔에서 84.49엔으로 급락했다. 그의 발언은 최근 FRB 내에서 매파들이 제기하고 있는 조기 금리인상 주장에 대해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이날 발언은 6,000억달러 규모의 국채매입 프로그램의 종료를 2개월여 앞두고 FRB 내부에서 일고 있는 통화정책 방향 논란에 기름을 부을 것으로 보인다.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2차 양적완화와 관련해 "6,000억달러는 정당한 숫자라고 생각한다"며 국채매입 프로그램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주 말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은행 총재도 미 경제회복은 환영할 만하지만 성장전망을 낙관해서는 안 되고 정책의 방향을 틀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들은 최근 목소리를 높였던 매파 주장에 대한 온건파의 반박으로 해석된다.L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투표권을 가진 11명의 위원 중 매파로 분류되는 인사는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 제프리 래커 총재(리치먼드), 나라야나 코체르라코타 총재(미니애폴리스) 등과 케빈 워시 이사 등 4명. 이들은 FRB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사전에 시중에 풀린 자금을 회수하고 금리인상에 나서야 할 것이라며 조기 출구전략 시행을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FRB가 2차 양적완화를 예정대로 완주하겠지만 미 경제의 회복세가 뚜렷하고 정치적 지형도 추가적인 양적완화에 우호적이지 않은 만큼 추가적인 돈 풀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급속한 금리인상 역시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출구전략에 돌입하더라도 금리인상까지는 점진적인 수순을 밟아나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최근 크레디트스위스는 FRB가 출구전략으로 ▦성명문 문구의 변화 ▦환매조건부 매매거래(Repos) 환매권 행사 ▦모기지증권(MBS) 재투자 중단 ▦금리인상 등의 단계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2월 1차 양적완화 종료 이후 출구 쪽으로 나아갔던 FRB가 유럽 국가채무 위기 이후 다시 2차 양적완화를 들고 나왔던 점 등을 감안할 때 FRB가 설사 출구전략을 실시하더라도 상황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달 27일(현지시간) FOMC 이후 버냉키 의장은 통화정책에 관한 첫 번째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그가 인플레이션 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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