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감률이 7개월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탈피하면서 일본 경제가 지난 1992년 이후 21년 만에 장기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탈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이에 힘입어 28일 일본 닛케이225지수도 전일보다 3.51% 급등한 1만3,677.32에 장을 마쳤다. 엔ㆍ달러 환율도 장중 한때 99.02엔을 기록하며 11일 이후 처음으로 99엔대에 올라섰다.
◇물가ㆍ생산ㆍ소비 등 전반에 활기=일본 총무성은 5월 근원(신선식품 제외)CPI 증감률이 전년과 같은 0%를 기록했다고 28일 발표했다. 근원CPI는 일본의 물가동향을 가늠하는 대표 지수로 이 지표가 마이너스 행진을 멈춘 것은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만이다. 특히 전국 물가의 선행지수라 할 수 있는 도쿄의 근원CPI도 6월 전년동기 대비 0.2% 상승하며 두 달 연속 플러스 국면을 유지했다.
물가상승뿐만 아니라 산업생산ㆍ고용ㆍ소비 등 경제의 3대 축이 일제히 호조세를 나타냈다. 이날 총무성은 5월 산업생산이 전월 대비 2% 상승했다고 밝혔다. 산업생산은 제조업 동향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이전치인 0.9%와 전문가 예상치인 0.2% 모두를 크게 상회하며 1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마킷이 조사한 6월 제조업지수 역시 52.3로 2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용시장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5월 일자리 대 구직자 비율은 0.9를 나타냈다. 이는 10명이 구직에 나서면 9명이 취직에 성공했다는 뜻으로 약 5년 만의 최고치다. 소비심리도 살아나 5월 소매판매가 전년동기 대비 0.8% 상승하며 이전치인 -0.1%와 예상치인 0%를 모두 웃돌았다.
이 때문에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출이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RBS증권의 니시오카 준코 일본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물가상승률이 마침내 마이너스 국면을 벗어나는 등 28일 발표된 모든 경제지표가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일본은행(BOJ)의 목표인 물가상승률 2% 달성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경제가 계속 확장되고 엔저가 유지된다면 올 2ㆍ4분기(7~9월)에는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종합연구소(JRI)의 마쓰무라 히데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디플레이션 압력이 전반적으로 약해졌다"며 "다음달부터 물가상승률이 플러스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엔저 따른 착시효과" 경계론도 커=다만 일각에서는 근원CPI 증감률이 마이너스 행진을 멈췄지만 엔화약세로 에너지 수입 가격이 오른 데 따른 것으로 디플레이션 탈출을 속단하기에는 이르다는 목소리도 크다.
미즈호증권의 미야가와 노리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근원CPI에서 에너지 부문을 제외한 핵심CPI 증감률은 여전히 마이너스"라고 지적했다. 실제 핵심CPI는 전년동기 대비 -0.4%를 기록해 이전의 -0.6%보다는 개선됐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국면에 머물렀다. 한마디로 엔저에 따른 착시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가계소비도 부진한 실정이다. 5월 가계소비는 전년동기 대비 -1.6%를 기록해 이전치인 1.5%와 예상치인 1.3%를 크게 밑돌았다. 로이터는 "일부 소비층이 명품 소비를 늘린 여파로 소매판매는 호조를 보였지만 가계소비는 부진했다"며 "일부 전문가들은 내년에 소비세가 인상되면 소비심리가 더 위축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도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하고 나섰다. 아소 재무상은 이날 지표 발표 후 "디플레이션 국면을 뒤집는 것이 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1992년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동반 급락했던 사태를 언급하며 "20년 이상 지속된 것(디플레이션)이 단지 6개월 만에 반전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BOJ는 올 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 근원CPI가 전년동기 대비 0.7% 상승한 후 내년에는 소비세 인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1.4%, 2015년에는 1.9%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야가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CPI가 BOJ 예상만큼 나오지 않는다면 BOJ가 하반기에 또 다른 양적완화책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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