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병역, 부동산 그리고 표절문제는 단골메뉴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검증항목이 됐다. 지적 성과를 도둑질하는 행위인 '표절'은 국민으로서의 의무 회피나 지위·권력을 이용한 사리사욕의 추구 못지않게 공직 후보의 청렴성에 있어 큰 문제로 지적된다.
그런데 이처럼 학자·연구자는 물론 공직 후보자로서 평생 쌓은 평판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상황을 가져오기도 하는 표절 문제에 대한 우리사회의 접근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다. 동양의 전통이 지식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으며, 특정인이 이를 독점하는 것은 선비의 도리가 아니라고 이해돼 온 영향도 없지 않다. 그러나 매번 불거지는 표절을 두고 논란만 있었을 뿐 해법은 없었으며 이를 판단하기 위한 규범이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사회적 비용만 거듭 치러왔을 뿐이다.
변호사 출신으로 지적재산권법 전공자인 저자는 국내 최고의 표절 연구자로 꼽힌다. 이 책은 저자가 이성적·합리적으로 접근해 집대성한 국내 최초의 '표절 방지 교과서'다.
표절의 정의부터 표절의 유형, 검증 방법을 비롯해 풍부한 사례가 담겼다. 혼동할 만한 저작권법과 표절의 관계도 짚어줬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정보·지식에의 접근이 쉬워지면서 편집의 힘을 강조하는 '에디톨로지'가 유행하지만 이로 인해 인용이 쉬워지는 동시에 검색기술을 통해 표절을 찾아내는 것 또한 더 쉬워질 것이라는 저자의 날 선 전망이 흥미롭다.
표절이 만연한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저자는 학문적 관심보다는 학문 외적 '낙인 효과'에 논의가 집중돼 있다는 점과 학계에 만연한 '침묵의 카르텔'을 지적한다. 책의 지향점은 제재(制裁)가 아니라 정직하고 자유로운 글쓰기를 위한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3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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