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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금 1970년대 산업발전 시기와 1990년대 벤처창업 시기에 이어 제3의 기업가정신(企業家精神) 물결을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업가정신 생태계에 있어서 하드웨어나 구조는 외형일 뿐 이를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전문인력(people)과 작동과정(process)이고 이들이 결합돼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메커니즘이 될 때 비로소 생태계는 성장 플랫폼(platform)으로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자생적으로' 생태계가 조성된 실리콘밸리에서는 우수인력이 유입되고 교류하면서 활발한 상호학습과 신속한 제품개발을 통한 효과적인 프로세스가 정립되고 이러한 집적 효과를 통해 지역 전체가 기업가정신의 탁월한 플랫폼이 됐다. 그러나 후발자로서 '정책적으로' 생태계를 조성해가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창업지원제도·인큐베이터 등을 통한 외형적 구조를 먼저 만들고 나아가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인력 풀을 키우는 역방향의 추진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기업가정신 생태계의 성공을 위해 어떤 노력이 집중적으로 필요할 것인가.
기업가정신을 촉진하는 생태계의 핵심요소는 시장생태계와 혁신생태계다. 시장생태계에서는 상품을 팔 수 있는 상품시장 생태계와 자본을 공급해주는 자본시장 생태계가 필요하고 혁신생태계에는 혁신인력 생태계와 기술혁신 생태계가 있다. 이들 생태계에 우수인력 풀이 만들어지고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프로세스가 정립되도록 하는 것이 건강한 생태계의 관건이다.
상품시장 생태계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것은 협소한 국내시장이다. 따라서 중소벤처기업의 글로벌화를 통한 해외시장 진출이 관건이다. 상품시장 생태계 육성을 위해서는 글로벌 청년 기업가를 키우는 교육이 아닌 훈련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해외진출 기업인 등 지역 시장 전문가를 적극 활용하며 열정과 의지를 가진 청년 기업가와 제품과 경영능력을 가진 기존 기업가의 연계를 촉진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자본시장 생태계는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에 너무 의존해왔고 소수의 벤처캐피털회사를 제외하고는 아직 전문성 측면에서도 미흡하다. 자본시장 생태계 육성을 위해서는 투자가들이 해외와의 교류와 경험 공유를 통해 역량을 키우는 노력도 강화해야 하고 액셀러레이터나 상호협력체계를 만들어 멘토링·경영지원 등 복합지원 서비스를 함께 제공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이 엔젤이나 벤처캐피털리스트로의 역할을 수행해 차세대 벤처기업가를 키우는 선순환을 만들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혁신인력 생태계는 그간 대기업이나 연구소·대학에서 교육 받고 경험을 쌓은 창업자들이 주도해왔다. 그렇지만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나 우수한 R&D 역량에 비해 사업화 역량은 미흡하다는 점이 늘 지적돼왔다. 혁신인력 생태계 육성을 위해서는 국내에 외국계 창업인력들도 유치해 지원하거나 가능성이 큰 국내 혁신인력들을 외국 유수기관에 파견해 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글로벌 지원방식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효과적인 기술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자체개발에 많이 의존해온 기술혁신 방식에서 인수합병(M&A) 등 개방형 혁신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아울러 최근 강화되는 융합형 기술개발의 지원 확대와 함께, 전문 멘토와 전략 컨설팅회사를 육성해 기술혁신 사업성과를 키우고 기업가들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생태계의 중심에는 사명감과 문제 해결능력, 고객과의 공감과 절실함·열정, 인내력과 기업가정신을 가진 기업가가 있다. 이제는 기업가와 시장의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을 해결하려는 '글로벌 문제 해결형 생태계' 조성에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배종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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