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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종로 1번지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북쪽에는 과거 조선 상류층이 주로 살았던 북촌, 서쪽에는 궁중 나인 등 중인들이 살았던 서촌이 있다. 청와대 후문 쪽인 삼청동과 가회동에 이미 관광객이 그득하다면, 서촌 쪽은 이제 시작에 가깝다. 최근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를 펴낸 황인범(45·사진) 도편수가 요즘 주로 활동하는 곳이 바로 여기다. 도편수는 집을 지을때 최고 책임자의 목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올해로 17년차 목수인 그는 지리산 실상사 약수암, 설악산 백담사 요사채, 가평 현등사 2층 목탑 등 전국 문화재 수리현장에서 일해왔다. 이 책은 서촌의 대지 21평·건평 12평 남짓한 작은 한옥 '어락당'을 사실상 새 건물로 바꾸는 대보수 과정을 담았다.
건축공사판은 일이 거칠고 시비가 험하기로 빠지지 않는다. 그는 이 험난한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먹물' 출신이다. 강렬한 인상과 달리, 목소리도 설명도 조곤조곤한 그는 중앙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전남 순천에서도 농가 출신이라 몸 움직이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죠. (웃음) 대학 시절 학생운동도 좀 했는데, 그때 친구들이 졸업 땐 결국 다 대기업으로 가는 걸 보고 자괴감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 목수 스승들은 농사와 목수 일을 함께 하며 돈이나 명예 같은 것 없이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일종의 경외감이었죠."
하지만 왜 한옥일까. 한옥에서 지내본 사람은 대개 불편한 화장실과 부족한 수납공간, 특히 추위에 취약한 것을 단점으로 지적한다. "한옥이야말로 우리 역사와 생활습관에 가장 어울리는 공간인데, 지난 30~40여년 발전이 없었어요. 이 책은 그런 한옥을 고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해볼 만하다'라는 자신감을 주려는 목적입니다 "
그는 한옥 개조 때 반드시 건축사와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함께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설계도는 이미 도편수 머릿속에 있지만, 현대적 생활공간을 만드는 건 다른 문제죠. 그래서 주인과 건축사, 디자이너, 시공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하는 겁니다. 한옥은 자판기 버튼 누르듯 돈만 낸다고 뚝딱 나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한옥은 일반인이 쉽게 가질 수 있는 집이 아니다. 건축비만 평당 1,000만~1,300만 원대, 요즘 유행하는 '반값 한옥'도 700만 원대다. 반면 양옥은 평당 400만~500만 원이면 된다. "한옥에 산다는 건 문화를 느끼는 겁니다. 서양 장인의 '한땀 한땀' 공예품에는 큰돈을 선뜻 내면서, 한옥 장인의 작품을 비싸다고 해선 안되죠. 가격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투자입니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그는 정부나 지자체도 개선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기와만 해도 서울은 전통식만 인정하지만, 전남·전주는 S자형 시멘트 기와도 허용합니다. 더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도록 관점을 넓혀야 합니다. 또 현 건축법은 해체와 조립이 자유로운 한옥의 특성과 달라, 크고 작은 보수공사에 어려움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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