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된 일인지 최근 원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해도 산업계는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산업정책을 담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산업구조 개편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산업정책 기조를 점검할 때가 아닌가 싶다. 돌이켜보면 경제개발 초기부터 매우 제한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전략 업종에 투입함으로써 기간산업을 육성하는 데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조는 '13대 미래성장동력 산업육성(2014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략업종 중심 정책 실효성 없어
그런데 이러한 산업정책의 기조를 심각하게 점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연구개발활동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정부 및 공공 부문 연구개발비는 약 14조원으로 전체 연구개발비의 25%에 불과하다. 얼마 전 2014년 재무제표 기준으로 10대 그룹 상장계열사의 사내유보금이 무려 504조원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었다. 정부의 연구개발비 예산보다 몇몇 대기업들의 연구개발비 예산이 훨씬 큰 상황에서 정부의 전략업종 중심 정책은 실효성을 갖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철강·조선·석유화학·자동차 등 중화학공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이었지만 지금은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융복합산업 등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에 대한 민간기업의 자체 투자 결정이 더욱 중요한 상황이 됐다.
최근 산업정책에 있어서 '산업생태계 조성'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기술개발 지원 또는 경영지원 등의 단순한 형태의 산업정책수단에서 보다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으로 가치사슬과 공급사슬을 고려하겠다는 것으로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변화다. 산업경제제도의 개선은 산업생태계 조성에 있어서 가장 선행돼야 한다. 공정한 경쟁여건을 조성해야 하는 정부가 산업육성이라는 대의(大義) 앞에서 특정업종·특정기업에 세제혜택 등을 제공함으로써 기업의 경쟁의지를 약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봐야 할 것이다. 또한 혹시라도 우수한 중소기업이 쉽게 대기업에 합병돼 수직계열형 독점구조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면서 이에 필요한 경제규범을 정립해야 한다.
많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을 꺼리는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은 정책개선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마윈이라는 전직 영어강사가 알리바바라는 글로벌 B2B온라인 쇼핑몰을 키워냈다. 경제만큼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자본주의가 더 발달한 듯 여겨질 정도다. 지금 이웃 나라에서는 좋은 비즈니스 아이디어로 창업하고 성공신화를 써보겠다고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반면, 우리나라는 기업상장을 꺼리고 외부자본의 유입을 반기지 않는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 결국 기업 본연의 활동을 유도할 수 있는 근본적인 산업정책의 디자인이 필요하다.
경쟁 의지 커지게 생태계 조성해야
지난달까지 무려 50여개국이 가입의사를 밝힌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제시한 중국이 글로벌 제조강국의 면모를 갖추고 있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입지가 불안하다.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자신감 있게 사업을 확대해가는 중견기업의 등장과 그를 동경하는 많은 중소기업들이 나타날 수 있는 정책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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