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각하지 마, 날조된 환상일 뿐이야." 자연을 한 장의 멋진 사진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면 잠시 책장을 덮고 숨을 고르자. 부드러운 풀밭이나 폭포수가 떨어지는 물웅덩이를 배경으로 긴 머리를 찰랑대는 아름다운 여인이 맨발로 뛰어다니는 공간, 온화·풍요·자애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자연은 이제부터 사기와 절도, 강간, 불륜과 배신이 뒤엉킨 생존과 번식을 위한 막장드라마가 될 터이니.
저자는 우리의 일상에서 전형적으로 묘사되는 자연은 물건을 팔고자 하는 광고회사와 기업의 상술이 만들어 낸 '반쪽짜리'라고 꼬집는다. '자연적인 삶'을 유행처럼 강조하는 현실에서 "진짜 자연이 무엇이냐"고 되묻는 것이다.
책은 우리의 환상을 깨는 추하고 잔혹한 자연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무자비한 자연을 드러내기 위해 저자는 꽤 흥미로운 방법을 가져온다. 1,400여 년 전 가톨릭교회에서 규정한 '7대 죄악'인 탐욕 색욕 나태 탐식 질투 분노 오만을 기준으로 챕터를 구성, 이에 해당하는 자연 세계의 단면을 소개한 것이다. 인간의 어머니인 대자연이 실은 인간보다 7대 죄악을 더 악랄하게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참신한 발상은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독자의 흥미를 돋군다.
'탐욕' 파트에선 자기 유전자를 보호하고 남기려는 자연의 잔혹함을 소개한다. 수컷 얼룩말은 자신의 새끼가 아닌 새끼 얼룩말과 우연히 마주치면 죽을 때까지 물어뜯고 발로 찬다. 자신의 새끼가 살면서 마주칠 경쟁을 줄이는 것이다. 수컷 사자 역시 경쟁자를 제거하고 그가 거느렸던 암컷을 빼앗은 뒤 가장 먼저 다른 수컷의 새끼를 모두 죽인다. 곧 생길 자신의 새끼를 위해 더 많은 먹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색욕' 부분에선 섹스와 출산이 종의 번성을 위한 아름답고 숭고한 행위라는 편견에 찬물을 끼얹는다. 고방오리 수컷은 암컷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강제로 교미하고, 암거미는 교미가 끝난 수거미를 잡아먹는다. 인간 림프관에 들어가 최대 30년까지 기생하며 호의호식하는 사상충(나태)과 늘보로리스의 두개골을 부숴 뇌와 눈알을 빼 먹고 생식기, 내장, 피부까지 먹어치우는 오랑우탄(탐식) 등 다양한 사례는 선과 악이라는 개념으론 재단 못 할, 생존과 번식을 위한 역동적인 '삶의 전쟁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6번째 죄악까지 술술 풀려가던 이야기는 마지막 7번째 죄악인 '오만'에서 백기를 든다. 이 죄악에선 인간을 따라갈 종이 없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오만은 '자신은 다른 이들과 다르다며 일반적인 규칙을 자신에게 적용하길 거부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적인 것'에 대해 그릇된 이상을 품으면서도 오직 자신들만이 자연과 다르다고 진화론을 거부하는 인간이야말로 이율배반적 태도와 우월감에 빠져 있다"고 꼬집는다.
책에 소개된 추천사처럼 "가장 역겹고 불쾌한 것을 매혹적으로" 풀어내며 '잔혹하게 강인한 삶의 욕구'를 그려냈다. 사진 한 장 없이 텍스트만 구성됐지만, 인간의 선입견을 보란 듯이 깨부수는 다양한 사례가 생생하게 묘사돼 지루할 틈이 없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