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에 당첨되면 정말 한평생 편히 먹고살 수 있을까. 옛날 얘기다. 최고 407억원까지 타갔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평균당첨금이며 돈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로또당첨금이 평균 20억원이라지만 교육비에 치이고 집 마련에 노후 준비를 하다 보면 실제로 마음 편히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남지 않는단다. 로또 1등이라도 이름뿐인 백만장자에 불과한 시대다.
△1719년 미국의 스티브 펜티먼이 처음 만들어낸 '백만장자(millionaire)'의 개념은 원래 총자산에서 총부채를 뺀 순자산이 100만달러(약 11억원) 이상이라는 의미였다. 세월이 흘러 화폐가치가 떨어지자 보유 부동산과 자동차 등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돈을 굴릴 수 있는 '투자가능자산'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일부에서는 '억만장자(billionaire)'쯤은 돼야 갑부 축에 든다고 하지만 달라진 백만장자의 기준을 적용해도 전세계 인구의 0.2%(약 1,200만명), 우리나라의 경우 0.28%(14만4,000명)밖에 안 된다.
△ 돈만 많다고 모두 부자로 불리는 것은 아니다. 12대나 만석꾼을 배출한 경주 최부자집은 한해 거둬들이는 3,000석의 쌀 중 1,000석만을 자신들이 사용하고 나머지는 과객이나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을 세운 전형필 선생도 선친으로부터 800만평의 땅을 물려받아 매년 2만석, 현재 시가로 450억원의 재산을 쌓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을 우리 문화재를 사들이고 보전하는 데 바쳤다. 예전 우리의 만석지기들은 돈의 노예가 아닌 확실한 주인이었다.
△스위스 최대은행인 UBS에 따르면 백만장자들 대부분은 최소 500만달러는 돼야 부자라고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기준에는 돈의 많고 적음만 드러날 뿐, 가진 자로서의 자격은 나타나 있지 않다. 어차피 죽으면 빈손으로 돌아가는 게 인생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가진 만큼 사회에 돌려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백만장자의 품격이 아닐까.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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