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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62> “제발 일에만 집중하게 해주세요”

회의는 직장생활에서 꼭 필요한 요소지만, 가끔은 불필요한 회의도 분명 있습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갉아 먹고 온전히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는 이외에도 또 무엇이 있을까요?/사진출처=morguefile.com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업무 자체뿐만 아니라 그 배경에 속하는 사람들까지 봐야만 모든 문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문서 하나를 만들 때에도 서식과 정보 배치 방식,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관점을 반영한 문구 수정 등 세세한 이슈에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직장인으로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효율을 중시하는 외국과 달리 권위주의적인 상사가 유난히 많고 이로 인해 불필요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국내 컨설팅 A사의 임원은 컨설팅 업계 임원들이 모인 국제 컨퍼런스에서 매우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PPT 템플릿과 글자 크기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자신들과 달리 외국계 컨설팅 B사는 매우 ‘자유분방하게’ 자료를 만들고 있더라는 겁니다. 사실 컨설팅 업계에서 보고서는 특별히 발표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도 스토리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게끔 면밀하게 쓰여집니다. 그 과정에서 논리성, 자연스러움, 업무에 대한 이해도 등이 장표 한 장으로 표현된다고 믿는 전문가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형식은 논리와 체계를 갖추는 데 도움을 주지만 때때로 조직이 기능적 고착화의 길을 걷는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학자들은 지적합니다. 정해진 대로만 일을 처리하려는 습관, 그 궤를 벗어나는 논의나 아이디어 등은 ‘이상한 것’으로 취급받기 쉬운 환경 등은 얼마나 우리가 일 자체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세상에 사는지 느끼게 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B사는 동종업계지만 ‘자유로운’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던 것입니다. 업계의 틀을 깨는 다소 과감한 전략이 효율을 높여줄 거란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형식 이외에도 일을 제대로 못하게 하는 원인이 있습니다. 바로 감정입니다. 이 같은 문제는 일하는 듯한 기분을 즐기는 상사들에게서 비롯됩니다. 내용과 사안의 성격을 구분하지 않고, 자신이 책상에 앉아 도장을 찍거나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런 부류의 결정권자들은 회의를 즐깁니다. 일과 시간에는 열심히 부하들을 불러 ‘점검’을 빙자한 미팅을 열고,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는 외부 손님 접대를 빌미로 조직 밖을 돕니다. 그가 일에만 집중하며 온전히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은 하루에 1시간 조차 안 될지도 모릅니다. 평사원들 입장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죠. ‘불필요한 회의’는 업무의 흐름을 끊는 역할을 합니다. 또 조직 전체 차원에서는 도움이 안 되는데, 본인에게는 큰 이점이 있다고 판단하며 위험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아웃소싱(outsourcing)을 위해 거래처를 선정한다거나, 대규모 비용 지출을 필요로 하는 과제를 만들 때, 이런 경우가 생깁니다. 누군가는 일의 가치 판단 관점에서 제동을 걸고 싶겠지만, 이미 그 일을 해야만 한다고 마음먹은 의사결정자를 돌리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결국 상사의 감정과 취향에 의해 모두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일본 에도시대의 철학자이자 상인 윤리 전문가였던 이시다 바이간은 ‘제업즉수행(諸業卽修行)’이라는 개념을 주창했습니다. 일을 할 때마다 자신의 도를 닦는다고 생각하고, 성실히 임하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잘못된 업무 습관은 천성적인 게으름이나 지연보다도 더 무섭습니다. 조직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권자가 이런 형태의 윤리와 가치를 함양시키지 않으면, 일을 하다가 성과를 잘 내거나 못 내는 이슈 등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변을 내리지 못할 겁니다.

우리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와 관련된 부수적인 문제들을 접하느라 기운을 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가지에만 열심히 집중해도 문제를 해결하기 벅찬데 수많은 회의와 양식정렬 강박증으로 에너지를 다 써버리면 100%는커녕 역량의 50%도 발휘하기 힘들어집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상사는 ‘소통 역량의 부족’이란 문제점 역시 안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하라면 감으로 따라잡으며 상사의 일을 눈치껏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나중에는 실망으로, 또는 부하 입장에서는 과도한 업무 비중 등으로 비화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업무에 추가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요. 직원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도 복잡한 ‘관계’를 들여다보느라 되레 문제와 아이디어 자체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을 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후배 직원들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직장 상사라면 후배 직원들이 온전히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어떤 조치가 필요할지 한 번 쯤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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