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 출장 가는 경제인이라면 한 번쯤 들리는 식당이 스미스 앤드 월런스키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여는 연례 자선경매의 오찬 장소로 널리 알려진 스테이크 하우스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미란다 편집장이 앤디에게 사오라고 시켰다가 먹지도 않고 버린 스테이크가 이곳 메뉴다. 현지 주재원 사이에선 한국 손님을 점심 대접하기 알맞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간혹 운이 좋거나 예약을 서두르면 버핏이 수십억짜리 자선 이벤트를 벌이는 바로 그 자리를 차지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이곳은 그다지 고급 식당은 아니다. 스테이크 (필레미뇽) 가격은 40달러 정도. 생활물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맨해튼에서 이 가격이라면 대중레스토랑이다. 전채와 후식, 와인에다 봉사료를 합쳐도 1인당 100달러면 족하다. 전망 좋은 식당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버핏은 하필 이곳에서 자선 행사를 열까. 2000년 첫 경매를 하기 이전부터 뉴욕을 방문하면 이 식당에서 점심을 했다는 정도가 알려진 것의 전부다. 다만 몇 가지 추측은 가능하다. 버핏이 스테이크 광이라는 점이다. 그의 고향 오마하가 대표적인 쇠고기 벨트인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검소하고 소탈한 생활 습관과 삶의 철학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버핏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일까. 올해 자선경매 낙찰가격은 100만100달러. 지난해 346만 달러에 비한다면 바겐세일이다. 경매 시작 하루 만에 30만달러(시초가 2만5,000달러)를 넘어서자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400만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호사가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래도 100만달러를 넘었으니 낙찰자가 버핏의 체면을 살려주려고 무던히 애를 쓴 느낌이다.
△폭락한 점심 가격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82세의 고령 탓에 총기와 혜안이 흐려진 것이 아니냐고 쑥덕대는 것이다. 그럼에도 왕성한 대외 활동은 여전하다. 자신이 마음에 담아 둔 후계자를 몇 년째 발표하지 않을 정도로 건재하다. 현인의 은퇴가 언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점심 값으로 거액을 치를 사람들이 줄 섰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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