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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한다. 꽃이 열흘 붉을 수 없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시구도 있다. 인간의 권세도 부귀도 영원할 수는 없음을 의미하는 말들이다.
전성기는 영원할 수 없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고 수준의 기세를 어느 정도로 오래 유지하느냐는 사람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올해는 유독 한국 스포츠 ‘레전드(전설)’들의 활약이 빛났다.
스타트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개척자 박세리가 끊었다. 박세리는 지난 9월 한국여자프로골프 투어 KDB대우증권 클래식 초청으로 출전해 ‘박세리 키즈’로 불리는 후배들 앞에서 우승 시범을 보였다. LPGA 통산 25승에 빛나는 세계골프 명예의 전당 회원 박세리가 9년4개월 만에 고국 팬들 앞에서 다시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이다.
2주 뒤인 10월7일에는 한국인 1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멤버 최경주가 자신이 주최하는 한국ㆍ아시아 프로골프 투어 CJ 인비테이셔널에서 막판 뚝심을 발휘하며 대회 2연패를 이뤄냈다. 야구의 ‘국민타자’이승엽도 녹슬지 않은 방망이 솜씨를 뽐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7년간 뛰고 이번 시즌 복귀한 이승엽은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를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끌고 최우수선수(MVP)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세월을 거스르는 레전드들의 분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수년간 국내 스포츠계는 기술과 인프라에서 괄목상대한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자신을 우상으로 매진한 젊은 피들의 맹렬한 도전에도 레전드들은 명불허전의 경기력으로 건재를 입증했다.
최경주는 손가락이 골프채 손잡이에 엉겨 붙을 때까지 연습해 벙커 샷 달인이 됐지만 지금도 하루 두 시간 이상을 벙커 안에서 보낸다. 35세의 개척자 박세리는 20대 중반만 돼도 노장 소리를 듣는 여자골프 무대에서 여전히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다. 이승엽은 국내 후배들에게 자상한 형이지만 타석에 들어서면 얼굴에 웃음기가 싹 사라진다.
현장에서 지켜본 이 레전드들의 ‘불로초’는 바로 철저한 자기관리와 도전정신, 그리고 근성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모두 위기와 시련을 극복해낸 뒤 진정한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극심한 슬럼프와 부상, 퇴출 등이 발목을 잡았으나 기어코 바닥을 치고 더 높이 튀어 오른 ‘리바운더(rebounder)’들이다.
고비 때마다 ‘포기 대신 죽기 살기’를 택한 이들의 공통분모는 열정이다. 그들은 쉽게 식어 버리는 열정이 계속 불타도록 하는 비결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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