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적 목적입니다. 이것이 애매하면 협상은 물론 전투에서도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일본군 패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일본군은 미드웨이 공격과 미 함대 격멸이라는 2가지 혼재된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당초부터 전략적 목적이 분명하지 않았던 것이죠. 반면 미군은 일본 항공모함군의 격멸에 전략적 목적을 두었습니다. 물론 모든 전력도 이에 집중했습니다. 바로 이 같은 전략적 목적 차이가 미드웨이 해전의 승패를 가르고, 장기적으로는 일본 패망의 원인이 됩니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보면 전략적 목적의 부재가 두드러집니다. 협상관련 문서의 기초적 번역에서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만큼 허둥지둥한 흔적이 뚜렷한 것이죠.
우리나라는 수출주도형 경제체제를 갖고 있습니다. 좋든 싫든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수출을 늘려야 하는데, 이는 곧 국내시장의 일정부분 개방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습니다. 외국에서 우리 상품을 많이 사가도록 하려면 일차적으로 상품의 경쟁력을 높여야 하지만 어느 정도 외국 상품을 들여와야 한다는 얘기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역시 이 같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미국 방문인 만큼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이 때문에 협상 준비기간이 1주일에 불과했다는 점은 처음부터 협상실패를 내재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광우병 괴담, 대규모 촛불시위, 이 대통령 탄핵에 대한 인터넷 서명운동 등 일련의 혼란도 따지고 보면 국내협상에 실패한 결과물입니다. 야당과 시민단체의 공세에 다분히 정치적 동기의 냄새가 풍기지만 국내 이해관계자와의 협상 및 설득에 실패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협상기술의 부재는 더 큰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협상의 명수라고 알려진 영국의 케빈 케네디는 ‘모든 것은 협상이 가능하다(Everything is Negotiable.)’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자신이 내세우는 조건에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특히 협상은 심리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상대방의 심리도 꿰뚫어 봐야 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국내 한우 농가의 몰락 가능성, 그리고 국민의 먹거리 안전성에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일단 ‘니에트(아니오)’ 전술을 사용해야 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예전의 소련 외상 그로미코가 자주 써먹어 유명해진 이 협상기술은 마지막 순간까지 ‘NO’를 반복함으로써 잘못을 범하거나 손해를 입을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NO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어떻게든 승낙을 받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정보나 조건을 제공하고, 결국에는 당초보다 후퇴한 조건을 내놓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협상 실무자들이 이를 알고서도 실패에 이르렀다면 대통령의 의중을 지나치게 살핀 ‘영혼 없는 공무원’일 것입니다. 만약 아니라면 국익 외교, 국익 협상은 껍데기뿐인 말이 되고 말 것입니다. 협상기술 부재의 실무자들에게 성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테니 말이죠.이번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우리의 협상기술에 대한 총체적 점검이 있어야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구영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 gy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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