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의 옛 이름은 너섬이다. 강의 유속이 느려지면서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하중도라 쓸모가 없어 ‘너도 섬이냐’라는 뜻으로 너섬이라고 불렀는데 한자로는 여의도다. 1975년 국회의사당이 들어서면서 여의도는 한국 정치의 중심지가 됐고, 수많은 정치인과 정치지망생들이 흘러들어왔다가 밀려났다. 박윤수 전 국회의원 비서관도 그 중 한 명이다. 최근 정치 에세이집 ‘너섬객잔’을 펴낸 박 전 비서관은 22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여의도는 정치인과 보좌진, 기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잠시 들렀다 가는 객잔 같은 곳”이라며 "진보와 보수로 극단화된 현실에서 국민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여의도 생활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박 전 비서관은 진보 정당인 민주평화당 사무처 당직자로 정계에 입문해 열린민주당, 새로운물결, 더불어민주당을 거쳐 보수 정당인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까지 여야 의원 7명의 보좌진으로 근무했다. 소속 의원에 따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정무위원회 등 주요 상임위원회를 두루 거쳤다. 그는 국회에서의 경험을 “민주당 보좌진으로서, 때로는 국민의힘 보좌진으로서 서로 다른 진영의 구호와 프레임을 가까이서 목격했는데 서로 옷만 바꿔 입었을 뿐 정치의 본질은 같았다"며 "승리와 복수, 방어와 공격이 끝없이 반복됐다”고 돌아봤다.
책은 국회 보좌진의 눈으로 바라본 국회의 일상과 정치의 민낯을 가감없이 전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이중성이나 국정감사 이면의 진실, 직장인으로서 누적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번아웃 경험 등 민감한 주제도 다뤄진다.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옹호하거나 비판하기보다는 정치의 한복판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메커니즘과 반복되는 갈등의 구조를 관찰하는 방식이다. 박 전 비서관은 “진보와 보수를 모두 경험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상대를 비판할 때는 날카롭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때는 한없이 관대하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불거진 일부 정치인의 보좌진 갑질 행위에 대해 박 전 비서관은 “정당이 아니라 의원 개인의 성향 문제”라면서도 민주당 특유의 ‘운동권 문화’를 언급했다. 박 전 비서관은 “민주당 내에는 운동권 문화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를 악용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며 “국민의힘이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결국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짚었다. 보좌관들이 과거 의원의 갑질 행위를 폭로하는 것과 관련해 그는 “예전에는 불이익을 받을까 쉬쉬했다면 피해자들이 적극 나서면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라며 “금방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점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전 비시관은 2023년 8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적을 바꿨다. 주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는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보좌진은 의원과 정치인이 아니라 정당에 초점을 맞춘 직장인”이라며 “처음에는 민주당 성향인줄 알았는데 겪어보니까 보수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정체성은 중도보수"라고 웃어 보였다.
박 전 비서관은 2024년 12·3 계엄을 계기로 국회를 떠났다.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거처를 정하지 않은 채 ‘너섬객잔’을 나온 후 민간 기업을 거쳐 현재는 의료계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보수 진영에서 한나라당 시절 ‘차떼기 파동(불법 대선 자금)’으로 몰락의 길을 걸을 때 당사를 헌납하고 천막 당사로 당의 현판을 옮겼던 때 만큼의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했다"며 "내란 청산에만 몰두한 민주당의 모습에서도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박 전 비서관은 12·3 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국민들의 정치 성향이 지나치게 양극단으로 치닫는 현실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너무 내 편 네 편을 가르다보니 각자 정치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게 조심스러운 사회가 됐다”며 “정치는 너무 맹신할 필요도 없지만 무관심해서도 안되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자세로 다가가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인터뷰 말미에 박 전 비서관은 정치권을 향해 “너섬객잔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잠시 머물다 갈 이들이 싸우기만 하고 주인의 뜻을 왜곡한다면 객잔에서 쫓겨날 겁니다. 정치인들이 여의도에 잠시 머무는 객(客), 즉 손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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