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른바 ‘그린란드 관세’에 강경 대응할 채비를 갖추자 주식·채권·달러화 등 미국 자산가치는 급락하고 금·은 등 안전자산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월가에서는 미국과 유럽 간 무역전쟁이 극단적인 자본 대결로 번질 경우 대규모 ‘셀 아메리카(미국 자산 매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덴마크 연기금이 보유 중인 미국 국채 전량을 처분하고 나서며 시장의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20일(현지 시간) 미국의 주식과 국채·달러·가상화폐 등 자산들이 일제히 약세를 기록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1.76%),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2.06%), 나스닥종합지수(-2.39%) 등 뉴욕 증시 3대 지수가 모두 미끄러졌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도 이날 장중 0.07%포인트 뛴 4.29%까지 올라 지난해 9월 초 이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미국 채권 가격 하락에는 재정 악화 우려로 일본의 국채 수익률이 급등한 점도 추가적인 영향을 줬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98.64로 0.76%나 떨어졌으며 비트코인 가격은 이달 3일 이후 처음으로 9만 달러 밑으로 내려갔다. 달러 표시 자산과 달리 2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2% 급등하며 사상 처음으로 4800달러를 돌파했다. 금 현물 역시 4800달러를 돌파하며 종전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은 현물 가격도 장중 95달러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가를 다시 썼다.
시장에서는 그린란드 병합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 간 대치가 무역을 넘어 자본 전쟁으로 확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유럽이 미국에 타격을 입힐 목적으로 국채와 주식 등 보유 중인 미국 자산을 처분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실제 한 유럽 연기금 기관이 국채를 모두 처분하겠다고 나섰다. 덴마크 연금기금 아카데미커펜션은 1억 달러(약 1480억 원) 규모의 미국 국채 보유분을 이달 말까지 전부 매각할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교사와 학자들의 노후 자금 250억 달러(약 37조 원)를 운용하는 이곳은 미국의 재정 건전성이 계속 악화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아네르스 셸데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신용도가 좋은 국가가 아니고 미국 정부의 재정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블룸버그에 이번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연방정부는 2025 회계연도(2024년 10월~2025년 9월) 약 1조 800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은 2001년 이후 매년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재정 건전성 악화가 만성적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해 5월 예산 적자와 고금리 상황에서의 부채 차환에 따른 높은 차입 비용을 이유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강등하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아카데미커펜션의 이번 결정이 그린란드 병합 문제를 두고 미국과 유럽이 격돌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그린란드에 파병한 유럽 8개국(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을 상대로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자 유럽에서도 약 160조 원 규모의 관세 부과, 일명 ‘무역 바주카포’라 불리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 등 보복 조치를 검토하고 나섰다. 특히 독일 도이체방크는 미국이 실제로 관세를 부과할 경우 유럽 각국이 보유한 국채와 주식 등 미국 자산을 처분하는 방식으로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외국인이 보유한 미국 국채 가운데 약 40%를 소유하고 있다. 금액으로는 3조 6350억 달러(약 5373조 원)에 달한다. 주식 등 다른 자산까지 모두 더할 경우 EU가 보유한 미국 관련 자산은 10조 달러(약 1경 4776조 원)로 불어난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 레이 달리오는 이날 CNBC 인터뷰에서 “자본 전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외국인투자가들이 예전처럼 미국 자산을 사들이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초강수가 현실화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미국 주식과 국채가 민간까지 널리 분산돼 있는 만큼 정부의 매각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따르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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