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덴마크령 그린란드 병합 야욕이 미국과 유럽 간 무역 전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면서 달러 자산 가치가 일제히 요동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이어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체제가 균열 조짐을 보이면서 우크라이나 종전 움직임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분위기다. 서방 세계가 자중지란 상태에 빠지면서 외려 러시아가 전략적 이익을 얻게 됐다는 평가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분쟁이 어떻게 흐르느냐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과 안보 구도가 완전히 재편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EU, 트럼프 협박에 160조 원 보복 관세에 ‘무역 바주카포’까지 논의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유럽은 최근 그린란드 병합 반대 국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조치에 강대강 대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 시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고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의사에 반대하는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10%, 6월 1일부터 25%의 관세를 실제로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관세 부과 시기는 “그린란드의 완전하고 총체적인 매입에 관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로 제시했다. 관세 대상국들은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계획에 반대해 군사 훈련을 핑계로 14일부터 현지에 병력을 파견한 나라들이다. 미국은 지난해 체결한 무역협정을 통해 영국에는 10%, 유럽연합(EU)에는 15%의 관세를 각각 부과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에 17일 성명에서 “EU는 덴마크, 그린란드 주민들과의 전폭적인 연대를 표명한다”고 강조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그린란드의 미래는 주민들과 덴마크 국민들의 문제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히 틀렸다”고 반응했고,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자국 신문 인터뷰에서 “미국의 그린란드 침공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시도를 정당화할 것이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소속된 기독민주당(CDU)의 위르겐 하르트 외교정책 대변인은 영국 가디언을 통해 올해 북중미 월드컵 불참(보이콧)까지 고려할 의사를 시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협박에 굴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X(옛 트위터)에 “중국과 러시아가 신나는 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냉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가장 우호적인 유럽 정상으로 꼽히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한국을 방문한 18일 “새로운 제재 부과는 실수라고 믿는다”며 당혹감을 표시했다. 덴마크는 상당한 병력을 그린란드에 추가 파병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받은 8개국은 18일 공동 성명을 내고 덴마크·그린란드 국민과 전적으로 연대한다고 밝혔다.
EU는 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27개국 대사가 참석한 긴급회의를 열고 지난해 대미 무역 협상 과정에서 마련했다가 보류한 930억 유로(약 159조 원) 규모의 보복 관세 발효안을 논의했다. EU는 나아가 ‘무역 바주카포’라고 불리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까지 대응 방안으로 꺼냈다. ACI는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에 서비스, 외국인 직접 투자, 금융시장, 공공 조달, 지식재산권 등의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다. 2023년 도입한 이후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제도다. 영국 BBC는 마크롱 대통령은 18일 유럽 주요국 정상과 접촉해 ACI 발동을 공식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무역위원장도 17일 ACI 발동을 EU 집행위원회에 요구했다.
중국 찾아가는 독일·캐나다 총리…‘월드컵 보이콧’도 점점 힘 실려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대로 관세를 부과할 경우 최대 피해국은 독일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관세로 프랑스산 와인·치즈, 노르웨이산 연어, 덴마크에서 조립된 뱅앤올룹슨 스피커 등이 줄줄이 타격을 입게 된다.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 유명 브랜드 제품도 그 영향을 피할 수 없다. 특히 독일은 지난해 1~10월 대미 수출액이 1278억 8000만 달러(약 188조 5000억 원)로 유럽 내 최대로 평가됐다. 이어 프랑스(552억 8000만 달러), 영국(548억 9000만 달러), 네덜란드(293억 6000만 달러), 스웨덴(132억 달러), 덴마크(101억 3000만 달러), 핀란드(68억 달러), 노르웨이(56억 7000만 달러)가 그 뒤를 이었다.
세부 품목 가운데서는 승용차의 수출액이 가장 많았다. 이 기간 독일의 대미 승용차 수출액은 194억 달러, 영국은 60억 2000만 달러, 스웨덴은 21억 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독일은 또 벌크 의약품(소비자 판매 전 단계의 의약품)을 138억 4000만 달러, 소매 의약품을 42억 3000만 달러, 의료·수술용 기구를 37억 9000만 달러씩 미국에 수출했다. 프랑스도 미국에 벌크 의약품·백신(47억 3000만 달러)과 소매용 의약품(44억 9000만 달러) 등을 많이 팔았다. 네덜란드는 반도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기업을 필두로 해당 기간 반도체 공정 장비만 22억 2000만 달러어치를 미국에 넘겼다.
유럽 국가들의 미국 비판은 이번 주 시작한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이어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이 무역을 통해 우리의 수출 이익을 훼손하고 최대한의 양보를 요구하며 공개적으로 유럽을 약화시키고 종속시키려고 한다”며 “용납할 수 없는 관세를 영토 주권에 대한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러면서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G7 국가인 독일의 메르츠 총리는 아예 다음 달 24~27일 기업인들과 함께 중국을 방문할 계획을 잡았다. 지난해 5월 6일 취임한 뒤 첫 방중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또다른 G7 국가이자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토 위협을 받는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도 이달 14~17일 중국을 찾아 시진핑 국가주석, 리창 국무원 총리, 자오러지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 중국 권력 서열 1~3위를 모두 만난 바 있다. 캐나다 총리가 중국을 찾은 것은 2017년 저스틴 트뤼도 전 총리 이후 9년 만이다. 두 나라는 정상 간 만남 속에 중국산 전기차, 캐나다산 카놀라유 등에 대한 관세를 각각 대폭 인하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기로 했다.
농담 같이 나왔던 6~7월 북중미 월드컵 보이콧 의견에도 점점 힘이 실렸다. 유럽에 가장 피해가 적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타격을 크게 입을 방안이라는 점에서다. 독일 싱크탱크 베르텔스만재단의 루카스 구텐베르크 경제학자는 20일 현지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에 “유럽 축구 강국들이 보이콧으로 위협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며 “유럽은 이 지렛대를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르웨이가 노벨평화상만 줬어도 이렇게는 안 했을 텐데”…프랑스 와인에도 200% 관세 예고
분쟁 당사자인 그린란드는 미국의 무력 사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옌스 프레데리크 닐센 그린란드 총리는 20일 수도 누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이 그린란드를 차지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면서도 “그렇지만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린란드 정부는 주민들에게 닷새분의 식량을 비축하라는 권고 등이 포함된 새로운 지침을 배포하기 위한 준비에도 착수했다. 17일에는 누크에서 닐센 총리가 시위대를 이끌고 미국 영사관을 향해 행진하기도 했다. 시위대는 ‘양키는 집으로 가라(양키 고 홈)’ ‘그린란드는 이미 위대하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트루스소셜에 “나토는 20년간 ‘그린란드에서 러시아의 위협을 몰아내야 한다’고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덴마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며 “이제 때가 됐고 완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고 “내가 8개 이상의 전쟁을 중단시켰는데도 귀국이 나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나는 더 이상 순수하게 평화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지 않는다”고 적었다. 지난해 10월 10일 노벨평화상 수상 불발이 직·간접적으로 그린란드 병합 시도에 영향을 줬다는 의미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스웨덴의 기관이 시상하는 다른 부문 노벨상과 달리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시상한다. 이달 15일에는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자신의 진품 메달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에도 NBC 인터뷰에서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유럽 8개국에 대한 관세를 예정대로 부과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에는 “노 코멘트(언급하지 않겠다)”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이 집중해야 할 일은 우크라이나 전쟁이지 그린란드가 아니다”라며 “노르웨이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선정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20일에는 트루스소셜에 그린란드와 캐나다, 베네수엘라에 성조기를 내건 자극적인 합성 그림을 올리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취임 1주년을 맞아 워싱턴DC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토도 매우 기쁘고, 우리도 매우 기쁠 해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장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아가 또다른 명분을 들며 추가 관세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취재진과 만나 자신을 계속 비판하는 마크롱 대통령이 가자지구 평화위원회에 참여하지 않는 상황을 거론하며 프랑스산 와인과 샴페인에 2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20일에는 트루스소셜에서 영국이 지난해 5월 인도양의 차고스 제도 주권을 모리셔스에 이양하기로 한 점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충격적이게도 우리 멋진 나토 동맹국인 영국이 중대한 미군 기지가 있는 디에고 가르시아 섬을 모리셔스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줘 버릴 계획”이라며 “중국과 러시아가 이런 완전히 나약한 행위에 주목하지 않을 리 없다”고 꼬집었다.
영국은 1968년 식민지였던 모리셔스의 독립 이후에도 차고스 제도를 분할해 계속 다스렸다. 영국은 2019년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결에 따라 반환을 결정했지만, 차고스 제도 디에고 가르시아섬에 있는 영미 합동 군기지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이를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찮게 나왔다.
주식·채권·달러 ‘트리플 약세’에 금·은 가격만 고공행진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는 참모들도 힘을 보탰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19일 다보스 포럼 행사장에서 유럽의 보복 관세 움직임을 두고 “매우 현명하지 못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를 미국의 전략적 자산으로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도 20일 다보스 포럼에서 유럽이 보복 관세를 실제로 단행할 경우를 가정해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맞대응 국면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확전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같은 날 같은 행사장에서 “관세의 적절한 사용”이라고 두둔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일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적법성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앞서 로이터통신 등은 대법원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사건을 선고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블룸버그통신은 “대법원이 4주간의 휴정을 준비하고 있어서 다음 결정일은 2월 20일”이라고 보도했다. 대법원 일정상 상호관세 관련 판결이 일러도 2월 20일 전까지는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상황이 계속 악화하다 보니 월가에서는 미국과 유럽이 금융시장에서 극단적으로 맞붙는 시나리오까지 대비하는 분위기다. 블룸버그통신은 19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에 대응해 유럽 국가들이 미국 자산을 매각할 수 있다는 추정까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럽은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외국인이 보유한 미국 국채 가운데 약 40%를 소유하고 있다. 금액으로는 3조 6350억 달러(약 5373조 원)에 달한다. 또 미국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주식 등 다른 자산까지 모두 더할 경우 EU가 보유한 미국 관련 자산은 10조 달러(약 1경 4776조 원)가 넘는다. EU의 비회원국인 노르웨이도 국영 펀드로만 2조 1000억 달러(약 3102조 원)어치의 미국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이 합심해서 자산 매각을 무기화할 경우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과 금융시장을 한꺼번에 휘청이게 할 수준은 되는 셈이다.
2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실제 덴마크 연기금 아카데미펜션은 미국 국채 보유분 1억 달러(약 1480억 원)어치를 전량 처분하기로 했다. 이 연기금은 교사, 학자들의 노후 자금 약 250억 달러(약 37조 원)를 운용하고 있다.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은 다만 유럽의 미국 자산은 민간까지 널리 분산돼 있어 이를 일사불란한 대응 수단으로 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규모 물량을 받아줄 곳이 없는 데다 자본을 옮길 대체 투자처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조차 환율 급변과 자국 금융시장 충격을 걱정해 미국 국채를 급매하는 방법은 쓰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FT는 “유럽에서 미국 자산을 보유한 주체의 다수는 정부가 아닌 민간 기관투자가”라며 “유럽은 미국 주도의 금융 체제에 깊게 통합돼 있어 중국보다 취약성이 훨씬 더 크다”고 지적했다.
전통적 동맹 관계에 균열이 벌어지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충격에 휩싸였다. 20일 뉴욕 증시에서는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1.76%),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2.06%), 나스닥종합지수(-2.39%) 등이 그린란드 갈등에 모조리 급락했다. 비트코인 가격도 장중 8만 8000달러대까지 주저앉으며 1월 3일 이후 처음 9만 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유럽 우량주를 모은 유로스톡스50은 19일 1.72% 내려 지난해 11월 18일(1.88%)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고, 20일에도 0.57% 더 하락했다.
글로벌 채권시장에서도 벤치마크(기준) 상품인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이 장중 4.29%까지 올라 지난해 9월 초 이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3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도 4.92%까지 치솟아 역시 4개월 만에 최고치에 도달했다. 채권 금리가 올랐다는 것은 가격은 그만큼 내려갔다는 뜻이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98.64로 0.76%나 떨어졌다.
반면 달러화와 무관한 안전자산인 금과 은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국제 금 현물 가격은 장중 사상 처음으로 트로이온스당 4700달러를 넘어섰다. 은 현물 가격도 장중 트로이온스당 94달러를 돌파했다. 은값은 지난해 1년 동안 140% 이상 오른 데 이어 올 들어서도 30% 넘게 솟구치고 있다.
美·유럽·세계 GDP 성장률 깎고 빅테크 타격…‘나토 균열’에 러시아에서는 조롱 봇물
미국과 유럽 간 무역 전쟁이 현실화되면 금융시장뿐 아니라 실물 경기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도 잇따랐다. 블룸버그 통신은 19일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의 분석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실제로 부과하면 유로존 전체의 국내총생산(GDP)이 약 0.1%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관세 대상국 가운데 독일은 단계적 관세 부과시 GDP가 0.2% 줄고, 일괄 부과시에는 0.3%까지 감소할 것으로 관측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에 대해서도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들을 포함해 여러 업종이 비용 증가, 매출·투자 감소, 생산 차질 등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연구개발(R&D) 기지나 매출 거점을 아일랜드 등에 두고 있는 애플을 비롯한 기술 기업들, 제약 업체들이 받는 충격이 클 것으로 봤다. 이 때문에 20일 뉴욕 증시에서도 엔비디아가 4.38% 내린 것을 비롯해 애플(-3.46%), 구글 모회사 알파벳(-2.42%), 마이크로소프트(-1.16%), 아마존(-3.40%), 브로드컴(-5.43%), 테슬라(-4.17%) 등 시가총액 상위 기술주들이 줄줄이 하락했다.
19일 글로벌 컨설팅 업체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유럽 8개국과 미국이 서로 25%씩 관세를 부과할 경우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2.6%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같은 날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3.3%)보다 0.7%포인트 낮은 수준이었다.
정작 미국과 유럽 간 갈등에 웃는 쪽은 러시아다. 19일 로이터통신은 러시아가 미국과 유럽 간 갈등 확대를 반기고 있다고 전했다.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나토가 엉망진창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일부 국제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그린란드 합병 문제 해결이 미국사뿐 아니라 세계사에 남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비꼬았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SNS에 글을 올리고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덴마크를 다시 작게(MDSA)’ ‘유럽을 다시 가난하게(MEPA)’와 같다”며 “멍청이들아, 이 아이디어가 이제야 이해가 가느냐”고 조롱했다. 러시아 매체인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는 “유럽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고 보도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도 20일 모스크바 외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원칙적으로 그린란드는 식민지 정복의 결과일 뿐 원래 덴마크의 일부가 아니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내놓았다. 그린란드는 덴마크·노르웨이 연합 왕국 시절인 1721년 노르웨이 선교사 한스 에데게가 선교 활동을 위해 찾았다가 식민지로 삼은 뒤 300년 넘게 덴마크령으로 남은 땅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을 축출한 뒤부터 그린란드에 군사 기지를 운용하고 있다. 주민이 5만 7000여 명에 불과한 그린란드에는 희토류 등 광물자원과 석유·천연가스 등도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 시도의 이유로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을 드는 데 대해서는 “우리는 그린란드를 점령하려는 계획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거리를 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일 SNS를 통해 “러시아가 대규모 공격 준비를 마쳤고 현재 실행만 기다리고 있다”며 불안을 호소했다. 우크라이나는 종전 논의가 미뤄진 사이 키이우·하르키우 등 주요 도시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받아 전기·난방 공급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는 공습을 매일 이어가며 우크라이나의 물류 거점과 최전방에서도 전선을 넓히고 있다. 우크라이나 종전 의제는 그린란드 현안에 밀려 다보스 포럼에서도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현 시점에서만 보면, 미국과 유럽 간 힘겨루기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우세로 끝날 확률이 높아 보인다.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유럽이 경제·안보적으로 미국에 기댄 부분이 지나치게 커진 까닭이다. 사실상 러시아를 방어할 목적인 나토 체제를 감안할 때 미국이 군사 행동까지 나설 경우 유럽이 이를 막을 방도가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항상 비판적인 뉴욕타임스(NYT)도 강경한 대응과 보복 조치는 유럽의 경제와 안보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 가지 변수라면 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의 전선을 돌릴 만한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다. 새해를 맞아 트럼프 대통령이 유발한 지정학적 위기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가운데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도 그 어느 때보다 커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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