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가까이 됐다. 2013년 3월의 어느 날 신제윤 당시 금융위원장 내정자를 자택 인근에서 만났다. 그는 “관치(官治)가 없으면 정치(政治)가 되는 것이고 정치가 없으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의 내치(內治)가 되는 것이다. 내시들이 하는 것”이라고 금융권에 직격탄을 날렸다. 과거에는 정부의 관치가 셌지만 이후에는 정치권이 금융사의 인사와 대출을 주물렀고 이제는 금융지주 회장들이 소왕국을 구축해 제멋대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혁의 신호탄이었다.
뒤의 상황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이명박 정부 때 잘나갔던 ‘4대 천왕’ 회장들은 전부 갈렸고 회장 선출 과정부터 추천위원회 구성, 이사회 구성까지 일사천리로 개혁이 이뤄졌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던 사외이사는 거마비가 깎이고 2곳까지만 겸직이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여러 번의 논의와 수정 끝에 더 단단해지고 촘촘해졌다. 그 사이 차세대 전산 시스템을 두고 은행장과 감사가 정면 충돌한 ‘KB 사태’와 채용 비리, 파생결합펀드(DLF) 사건 등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지만 합리적이며 적법한 최고경영자(CEO) 선출 관행이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에 대항할 수 있는 토종 업체도 키웠으니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 같은 텃밭 위에서 KB금융은 윤종규 전 회장이 9년 일하는 동안 명실상부한 리딩뱅크 지위를 탈환했고 시가총액 50조 원 시대의 발판을 다졌다. 옛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으로 나뉘어 이전투구를 벌이던 우리금융은 임종룡 회장 재임 기간 동안 하나로 뭉쳤고 종합금융그룹의 위상을 되찾았다. 적어도 시장의 평가는 이렇다.
금융 당국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참호 구축” 발언으로 시작된 지배구조 논란이 금융권을 달구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재명 대통령이 “가만 놓아 두니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 멋대로 소수가 돌아가며 계속 지배권을 행사한다”고 강하게 질타한 후 금융위와 금감원은 경쟁하듯 금융사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신 전 위원장 말에 빗대자면 ‘내치’의 시대로 회귀한 셈이다.
감독 당국은 외부에서 아는 것보다 더 민감한 정보를 알 수도 있다. 하지만 걸리는 게 있다. 이 대통령은 이너서클을 언급할 때 투서가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내용을 보니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 투서는 잘못된 ‘정치’의 시발점이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국내에서 은행이 문을 연 뒤부터 인사철마다 청와대와 국회, 사정 기관 등에 투서가 쏟아졌다. 상당수는 인사 불만에서 시작된 것들이다. 오죽했으면 윤 전 회장이 인사 청탁이 들어온 사람은 수첩에 적었다가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을까.
정치권과 당국의 개입과 간섭은 금융사를 되레 정치화하고 수동적으로 만든다. 지금처럼 외부 압력이 효과가 있다는 판단이 들게 되면 임직원들은 앞다퉈 줄대기에 나선다.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 은행에 주인이 있으면 사익을 추구하게 되고 지분을 쪼개 놓으면 대리인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적절한 운용이 중요하다. 이 원장은 지주사 사외이사에 교수가 많고 JP모건 같은 투자은행(IB)은 경쟁사 출신이 이사회에 참여한다고 국내 금융사를 지적했지만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이 20년 넘게 CEO로 있고 이사회 의장까지 겸하고 있다는 내용은 쏙 뺐다.
닷새 전 금융 당국의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TF)가 내놓은 지배구조 개선 방향도 십여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의식과 대안도 예상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명백한 불법이 없다면 금융사는 실적과 주가로 평가받게 해야 한다. 당국은 답 없는 지배구조 문제에서 허우적거리기보다 앞을 봤으면 좋겠다. 일본 금융청은 지난해 3월 금융산업의 인공지능(AI) 전환을 강조한 ‘AI 디스커션 페이퍼’를 펴냈다. 영국의 ‘신산업 전략 2025’는 8대 핵심 산업 가운데 하나로 금융을 꼽았다.
모든 자산이 블록체인 위에서 거래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물간 지배구조 TF보다는 금융 당국의 깊이 있는 AI 전환 백서나 온체인 금융 전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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