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올해 미국의 실질 경제성장률이 3%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가 1% 정도이니 3배가량 성장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 규모가 한국보다 약 15배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격차는 너무나 뚜렷하다. JP모건체이스는 ‘트럼프 관세’로 미국에 경기 침체가 올 것이라고 했지만 이 경고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고용이 불안하지만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가 아직 견고하다. 거품 논란에도 인공지능(AI) 같은 자산 시장 호황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되레 어려운 것은 한국이다. 한국은행은 올해부터 2027년까지 한국 경제가 3년 연속 1%대 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재명 정부가 3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뿌렸음에도 나온 결과다. 사실상 성장 없는 시대가 도래하는 셈이다.
한국의 성장률은 1970~1980년대 연 10% 안팎의 고도성장기 이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하락해왔다. 덩치가 커진 이유도 있지만 반도체와 자동차 이후 가시적인 성과를 낸 산업이 많지 않다. AI와 로봇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기술력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금융 같은 서비스업은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다. 중국의 추격은 거세지는데 자유무역은 저물어가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는 사면초가다.
이런 상황의 총합이 잠재성장률이다. 올해 2% 밑으로 추락한 잠재성장률은 2040년께 0%가 된다.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470원을 오르내리고 국고채 금리가 불안한 것 또한 따지고 보면 저성장의 고착화가 근본 원인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한국 경제는 저성장과 그에 따른 재정 불안에 계속 노출될 수밖에 없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2026 세계대전망’에서 “선진국에 재정위기가 올 수 있다”고 했는데 정도의 문제일 뿐 한국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이 같은 우려에는 갈수록 커지는 미국의 부재가 한몫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세계 경찰과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 2025’는 중국의 제1 도련선 방어를 위해 한국과 일본의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명시했다.
제1 도련선은 일본~오키나와~대만~필리핀~보르네오섬을 잇는 중국의 대미 해양 방어선이다. 중국이 제1 도련선을 봉쇄하면 한국은 중동으로부터의 원유 수입 루트를 잃게 된다. 미국이 제1 도련선 방어를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일부 미군이 빠지는 자리는 한국과 일본이 채워야 한다. 주한미군의 역할도 재조정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한국에 핵추진잠수함을 허용해주는 것 역시 거꾸로 보면 지역 내에서 역할을 강화하라는 청구서다. 그에 따른 비용과 대가는 오롯이 우리 몫이다.
사실 안보와 경제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구제금융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한 곳은 미 재무부가 아니라 국방부였다. 당시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은 이번에야말로 한국의 관치와 보조금,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개혁하겠다며 본때(?)를 보여주려고 했다. 반면 국방부는 안보 동맹으로서 한국의 안정을 중시했다. ‘미국이 없는 세계’는 단순히 방위비 분담을 넘어서는 외교·안보·경제적 함의가 있다.
그래서 2026년은 대한민국이 경험해보지 않은 시대의 원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안으로는 1%대 저성장이, 밖으로는 미국의 부재가 본격화할 것이다. 국민들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성장이 없는 시기와 미국이 지켜주지 않는 글로벌 질서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9일 내년에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등 6대 분야 구조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구조 개혁을 통해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경쟁력을 확보해야 늘어나는 재정 수요를 감당하고 국민소득 4만 달러, 5만 달러로 나아갈 수 있다. 자주국방을 위한 길 또한 탄탄한 경제에서 나온다.
이는 이 대통령이 컨트롤타워가 돼야 가능하다. 대통령이 직접 키를 잡고 국민 통합과 이해관계 조정 등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야 한다. 구조 개혁이야말로 ‘만기친람’의 리더십이 필요한 분야 아닌가. 구조 개혁에서 성과가 나야 불안한 금융시장도 안정될 수 있다. 대전환의 시기, 한국의 미래 100년이 이번 개혁의 성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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