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2·3 비상계엄 선포를 전후해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한 행위들을 “헌정 질서를 훼손한 권력 남용”으로 판단했다. 핵심은 비상계엄 같은 국가긴급권은 대통령의 재량이라고 해도 절차를 무시할 수 없고, 권한을 이용해 수사까지 막는 순간 범죄가 된다는 점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부는 16일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특검이 구형한 징역 10년의 절반이지만 법원은 국무회의 절차 문제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체포영장 집행 저지 등 주요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일부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수준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기본 규칙을 훼손한 사안이라고 봤다.
먼저 법원이 가장 강하게 지적한 대목은 ‘국무회의 절차’다. 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긴급권 행사지만 헌법과 계엄법의 취지를 고려하면 국무위원 전원의 의견을 듣는 절차가 필수라는 것이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 측은 보안 유지를 이유로 통상의 국무회의 절차를 따르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긴급한 경우라도 소집 통지를 생략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은 없다”고 못 박았다. 야당의 탄핵 시도 등 계엄 선포 사유로 제시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국무위원 전원에게 통지를 하지 않은 점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계엄 해제 이후 ‘사후 선포문’에 서명한 행위도 유죄로 봤다.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계엄 절차가 적법했던 것처럼 보이기 위해 선포문을 사후 작성했고 문서에는 작성 시점이 실제보다 앞선 것처럼 기재돼 있었다. 법원은 이 자체가 허위 공문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이 그 사실을 인식한 상태에서 서명했기 때문에 고의도 인정된다고 봤다. “문제가 될 상황을 대비해 증명 목적으로 서명한 것”이라는 취지로 목적성까지 인정했다.
또 이 선포문을 한덕수 전 국무총리, 강 전 실장 등과 함께 폐기한 행위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비상계엄 선포문이 대통령 기록물이자 공용 서류로서 보존돼야 할 문서이며 “폐기 당시 문서의 사용 목적이 명백히 소멸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쉽게 말해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록을 임의로 없앤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공수처 체포영장 집행을 경호처가 막아선 부분 또한 법원은 ‘적법한 공권력 행사 방해’로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 논란을 들며 “불법 영장이니 따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영장 자체의 적법성을 인정했다. 더 나아가 윤 전 대통령이 수사에 불만을 표시하며 협조 의사가 없다는 태도를 경호처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드러냈고 경호처 직원들은 이를 “체포영장 불응 지시”로 받아들여 실행했다고 봤다. 결국 ‘대통령 경호처’라는 조직이 사실상 수사를 막는 방패로 동원됐다는 점을 법원이 문제 삼은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 의결로 권한이 정지된 상태였다는 점도 방어 논리로 제시했지만 법원은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공식 직무 권한이 없는 상태였더라도 체포영장 집행 방해를 사전에 논의하고 관여했다면 공모 관계가 인정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취지다. 즉 “대통령이 아니었으니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화폰 통화 기록 삭제 지시 혐의 역시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김성훈 전 경호처 차장에게 통화 기록 삭제를 지시한 행위 자체가 “수사 대비 목적의 증거 훼손 시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삭제가 완전히 이뤄졌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지시만으로도 범죄가 성립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외신 기자 대상 허위 공보 혐의는 무죄가 나왔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당시 국회 본회의장 봉쇄 여부 등을 외신에 허위로 알리도록 지시했다는 혐의였지만, 재판부는 공보실의 기능이 “대통령실 입장을 해외에 전달하는 역할”에 가깝고 사실관계를 판단·검증할 권한과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직권남용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계엄이 내란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다투는 별도 사건과는 결이 다르다. 다만 법원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며 필요한 절차를 건너뛰었고 이후에는 경호처를 동원해 본인에 대한 공권력 집행까지 흔들려 했다고 인정했다. 대통령 권한의 한계를 비롯해 국가긴급권의 통제장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한 판결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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