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결승선에 도달하기 전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붉은 말의 해인 올해 국민 모두가 생동감이 가득한 일상 속에서 시원하게 질주하는 도약의 해가 됐으면 합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조교사인 이신우(46) 한국마사회 조교사는 8일 경기 과천시 렛츠런파크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병오년 새해를 맞아 경마팬을 포함한 국민들에게 덕담을 요청하자 이같이 말했다. 2001년 기수로 데뷔한 그는 2011년 조교사로 전향하며 한국 경마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지난해 7월 조교사로서 통산 400승 고지를 밟는 등 기록을 쌓아가고 있다. 2006년 개봉한 영화 ‘각설탕’ 속 주인공 시은(임수정 분)의 모티브가 된 인물인 그는 제주한라대학교 마산업자원학과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면서 경마분야 인재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이 조교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0년대 말 진로를 고민하다 우연히 접한 기수 후보생 모집 공고를 계기로 경마와 인연을 맺었다. 기수로 선발돼 경마에 나섰으나 부상과 체중 관리라는 현실적 한계 때문에 10년 만에 은퇴 기로에 섰다. 말과 함께하는 현장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조교사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 조교사는 “기수는 찰나의 순간에 집중하는 직업이라면 조교사는 한 마리의 원석이 명마로 완성되는 전 과정을 설계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며 "한 마리 말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성장의 전 과정을 설계하는 총책임자이자 경마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고 설명했다.
조교사 데뷔 당시 가장 큰 장벽은 ‘전례 없음’이었다. 여성 조교사 자체가 처음이었고, 마방 관리사 전원은 남성이었으며 나이도 서른살로 가장 어렸다. 이 조교사는 “남성 위주의 경마계에서 여성으로서 장벽을 마주했을 때 선택한 해법은 권위가 아닌 소통이었다"며 “마주들과의 관계에서도 당당한 리더십과 체계적인 설명으로 신뢰를 쌓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첫 여성 조교사라는 점이 무거운 책임으로 다가왔다고 털어놨다. 여성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는 자신이 잘해야 했기 때문이다. 15년 만에 400승을 돌파하는 등 실력을 발휘했고, 지난해 말에는 이 조교사에 이어 또 한 명의 여성 조교사가 탄생했다.
이 조교사는 한국 경마가 외형적 성장은 이뤘지만 내실 강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경마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일본의 경우 단순한 기록 경쟁을 넘어 ‘말 한 마리의 이야기’를 콘텐츠화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1970년대까지 일본도 경마가 주목받지 못했는데 말의 서사를 기록하고 전달하면서 대중의 마음에 스며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마가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되기 어려운 분야라는 점도 강조했다. 사료 급여나 데이터 분석은 AI가 대신할 수 있지만 말과 교감하며 컨디션과 심리를 읽어내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 조교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일관성과 말의 복지다. 무리한 훈련으로 기록을 좇기보다 말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즐겁게 달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에 따르면 말은 사람의 감정을 그대로 읽는다. 기수나 조교사가 조급해하면 이는 곧 바로 말에게 전달된다고 한다. 기다림과 일관성이 사람과 말이 신뢰를 쌓는 출발점이다.
경마를 여전히 도박으로 인식하는 시선에 대해서는 본질을 바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조교사는 “베팅은 경마 참여와 응원의 한 요소일 뿐 핵심은 말이라는 생명체가 달리는 스포츠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지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 등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말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환경이 열려 있으니 경마계 역시 적극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배 조교사들을 향해서는 ‘방향’을 잊지 말라고 조언했다. 이 조교사는 “화려한 승리 뒤에는 수많은 실패와 기다림이 있다”며 “말이라는 생명을 파트너로 존중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서사를 써 내려가는 것이 조교사의 본령”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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