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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주체도 몰랐던 '조사 결과 발표'… 쿠팡에 ‘패싱’ 당한 경찰 [채민석의 경솔한이야기]

쿠팡, 25일 '자체 조사 결과' 발표

잠수부까지 동원해 증거물 확보해

피의자 접촉에 증거물 포렌식까지

자체조사 마치고 경찰에 증거 제출

과기부 반박… 경찰은 원론적 입장

"검찰 수사였다면 '패싱' 상상못해"

서울 시내 한 주차장에 주차된 쿠팡 배송 차량. 연합뉴스




고객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쿠팡이 이번 사건의 핵심 증거물인 피의자의 노트북을 확보해 포렌식을 한 뒤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협의되지 않은 셀프 조사’라며 즉각 비판에 나섰고, 쿠팡은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를 한 사안’이라고 재반박하며 정부와 쿠팡 사이에서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경찰은 쿠팡과 어떠한 형태의 협의도 없었으며, 피의자와 쿠팡이 접촉한 사실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수사 주체인 경찰이 철저하게 민간 기업으로부터 ‘패싱’을 당하는 초유의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28일 경찰 관계자는 서울경제신문에 “이번 자체 조사 결과 발표와 관련해 경찰은 쿠팡과 어떠한 형태의 협의도 진행한 바 없다”며 “쿠팡의 조사 과정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면밀히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쿠팡은 성탄절인 이달 25일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인을 특정했다며 “고객정보 유출에 사용된 모든 장치가 회수됐음을 확인했다”며⁠ “유출자는 3300만 고객 정보 접근했지만 약 3000개 계정만 저장했고, 이 역시 모두 삭제했다”고 밝혔다. 이번 범행은 유출자의 단독 범행이었으며, 2차 피해 등 소비자의 피해는 없었다는 것이 쿠팡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다.

문제는 쿠팡이 이달 21일 경찰에 피의자의 노트북을 임의제출 하기 전에 먼저 손을 댔다는 것이다.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사안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전직 중국인 직원을 쿠팡이 먼저 접촉한 것으로도 모자라 그의 노트북을 포렌식을 한 정황도 포착됐다. 경찰의 조사가 이뤄지기 전에 개인정보 유출 기업이 핵심 증거물을 먼저 확보해 건드린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쿠팡은 “디지털 지문(digital fingerprints) 등 포렌식 증거를 활용해 고객 정보를 유출한 전직 직원을 특정했다”며 “유출자가 쿠팡 고객 정보를 접근 및 탈취하는 데 사용된 모든 장치와 하드 드라이브는 검증된 절차에 따라 모두 회수되어 안전하게 확보됐다”고 밝혔다. 이어 “유출자는 개인용 데스크톱 PC와 MacBook Air 노트북을 사용해 공격을 시도했고 접근한 정보 중 일부를 해당 기기에 저장했다고 진술했다”며 “유출자는 언론을 통해 데이터 유출 보도가 나오자 극도의 불안 상태에 빠져 노트북을 물리적으로 파손한 뒤 쿠팡 로고가 있는 에코백에 넣고 벽돌을 채워 인근 하천에 던졌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쿠팡은 잠수부를 동원해 해당 하천에서 노트북을 회수했으며, 언론에 관련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해당 노트북은 이달 21일 경찰에 임의제출 됐지만, 쿠팡의 발표에 따르면 쿠팡이 경찰보다 먼저 해당 노트북을 포렌식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서울 시내 한 주차장에 쿠팡 배달 차량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개인정보 유출 경위 파악에 수사력을 집중해야 할 상황에 쿠팡의 노트북 회수 과정 조사라는 ‘짐’을 짊어지게 된 경찰의 부담감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은 임의제출 된 노트북이 실제 피의자가 범행에 사용한 것이 맞는지 등을 파악하는 한편, 제출 전 데이터 변조가 이뤄지지 않았는 지 여부도 함께 확인해야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쿠팡이 수사 주체인 경찰을 ‘패싱’하고 자체적으로 피의자와 먼저 접촉했다는 점, 경찰에 알리지 않고 핵심 증거물을 잠수부까지 동원해 회수한 행위에 법적인 문제가 없는 지 등도 함께 파악해야 한다. 쿠팡이 만약 데이터에 접근했다면 증거인멸 혐의까지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은 이러한 쿠팡의 행위에 대해 소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경찰은 이달 25일 쿠팡의 자체 조사 결과가 나온 뒤 한참이 지나서야 ‘협의한 바 없다’ 정도의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수사 주체가 수사 대상으로부터 고의적인 패싱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유감이나 비판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은 것이다.



반면 과기정통부는 즉각 입장문을 발표하고 강력 항의 의사를 전했다. 과기정통부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조사 관련 배포 자료는 민관합동조사단의 확인이 필요한 사항”이라며 “민관합동조사단에서 조사 중인 사항을 쿠팡이 일방적으로 대외에 알린 것에 대해 쿠팡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쿠팡이 다음 날 성명을 공개하고 “조사는 '자체 조사'가 아니었다. 정부의 지시에 따라, 몇 주간에 걸쳐 매일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며 진행한 조사였다"라며 "정부의 감독 없이 독자적으로 조사했다는 잘못된 주장이 계속 제기되면서 불필요한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라고 재반박하면서 진실게임으로 비화되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쿠팡은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했지만 정작 ‘정부’인 과기정통부는 협의되지 않았다고 반박하는 상황 속에서 경찰은 ‘정부’ 범주조차에 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쿠팡이 ‘정부’라고 지칭하는 기관이 어디냐를 두고 추측이 난무했지만 현재는 국가정보원으로 굳어지고 있다. 국정원은 자신들이 쿠팡 측에 조사를 지시했다는 소문이 돌자 “쿠팡사태와 관련해 쿠팡 측에 어떠한 지시를 할 위치에 있지 않고, 어떠한 지시를 한 바 없다”라면서도 “다만, 외국인에 의한 대규모 정보유출 사태를 국가안보 위협 상황으로 인식해 관련 정보 수집·분석을 위해 업무협의를 진행한 바 있다”고 밝혔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업무협의’라는 표현을 국정원이 사용한다면 민간기업 입장에서는 단순 협의가 아니라 ‘지시’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쿠팡이 다른 기관과 협의해 자체 조사를 했다고 밝히자 경찰 내부에서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경찰 고위급 관계자는 “국정원이 아니더라도 결국 쿠팡은 특정 기관과 소통을 하며 조사를 벌였다는 것인데, 이는 쿠팡이 경찰을 정부기관으로 인식조차 안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만약 검찰이 이번 사태를 수사했다면 쿠팡이 이정도로 수사 주체를 무시한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고 밝혔다.



수사 주체도 몰랐던 '조사 결과 발표'… 쿠팡에 ‘패싱’ 당한 경찰 [채민석의 경솔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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