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충을 피해서 숨구멍(활로)을 막아야 해요.”
17일 서울 송파구의 한 바둑학원. ‘백돌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사범의 질문에 이은우(7) 군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유치원에서 하원해 바로 바둑학원을 찾은 이 군은 문제집을 푼 뒤 인공지능(AI) 기계와 직접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학원에는 서로의 수를 놓고 의견을 나누거나 대국에 앞서 잠시 명상하는 이 군 또래 아이들로 가득했다.
최근 이 군처럼 바둑교실을 찾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유튜브 시청과 생성형 AI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집중력 저하를 우려하는 학부모들이 바둑을 ‘사고력 훈련 수단’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알파고’ 등장에 저물 것으로 예상되던 바둑 산업도 덩달아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21일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바둑 종목에 등록된 만 15세 미만 선수는 2022년 696명에서 올해 956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전체 바둑 등록 선수는 같은 기간 3260명에서 1633명으로 줄었지만,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한 저연령층의 유입은 외려 늘었다.
실제 각 학교 방과후 교실이나 지역문화센터에는 초등 바둑교실에 잇달아 개설돼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강남구가 올 9월 첫 개최한 ‘청소년 바둑 페스티벌’에는 초·중·고교생 231명이 몰리면서 일찌감치 참가 신청이 마감됐다. 한국기원은 올해에만 청소년 바둑대회를 10회 열었다.
아동을 중심으로 한 최근의 ‘바둑 열풍’은 숏폼 등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난무하는 현실에 관한 우려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경기 광명시에 거주하는 학부모 김민희(43) 씨는 “초등학생 아이에게 휴대전화를 사주니 밥 먹을 때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며 “점점 산만해지는 것 같아 걱정돼 집중력을 키울 겸 2학기부터 방과후 바둑 수업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바둑학원을 다니는 학생 중에는 유치원생, 초등 저학년생이 많은 편이다. 본격적인 국·영·수 공부에 앞서 이른바 ‘무거운 엉덩이’를 위한 준비 단계로 바둑학원을 보낸다는 얘기가 나온다. 홍성원 이세돌바둑학원 원장은 “무한대의 선택지 중 가장 좋은 수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고력을 높일 수 있는 게 바둑”이라며 “챗GPT 등 ‘빠른 답변’에 익숙해진 아이들을 걱정하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에는 문해력 향상을 돕는 독서 교육도 인기다. 올 10월 서울 대치동·목동 등에 문을 연 초등생 대상 독서 문해력 학원은 설명회와 입학 테스트 접수 모두 순식간에 마감됐다. 학원가에는 AI로 학생의 눈동자 움직임을 분석해 독서 이해도를 파악하는 기기까지 등장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독서 중점학교과 인문학 실천학교를 운영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전문가들은 AI와 미디어 콘텐츠가 발달할수록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방대한 정보 중 필요한 것을 가려내는 능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디지털 과의존’에서 벗어나려는 교육이 더욱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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